南 민간단체 삐라 살포에 北 개성·금강산 남측인사 추방 위협

삐라'가 남북관계의 변수로 다시 떠오르는 가운데 삐라(전단)의 살포 방향, 내용에 있어 기존의 등식이 완전히 뒤바뀌고 있으나 그 파괴력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측은 지난달 2일 남북군사회담에서 남측 민간단체의 ‘삐라’살포를 문제삼으며 개성·금강산 지구 내 남측 인원 추방 등의 대응조치를 경고했다.

■ '삐라' = 북에서 남으로(?)

기존에 대남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인식됐던 삐라 살포의 주체는 완전히 뒤바뀐 상태다. 지난 2004년 남북장성급회담 합의에 따른 상호비방 금지 원칙에 따라 북한은 삐라 살포를 중단했다. 우리 정부 역시 2004년을 기점으로 정부나 군 차원의 삐라 살포와 휴전선 대북방송을 전면 중단했다.

그러나, 탈북자를 중심으로 한 남측의 일부 반북 민간 단체들은 북한에 ‘삐라’ 살포를 계속하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측은 지난달 2일 남북군사회담에서 휴전선 인근에서 수거한 수백장의 삐라더미를 직접 들고 나와 강력 항의했다.

남측의 대북 삐라 살포 단체는 네 군데 정도다. 통일부 관계자에 따르면 탈북자인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씨는 지난 5년여간 1년에 10여차례 강원도 고성 앞 바다나 임진각 등에서 헬륨 애드벌룬에 삐라를 실어 북측에 보내왔다.

박 씨에 따르면 그가 북에 보낸 삐라는 연간 170만여장이다. 박 씨는 한번에 평균 10만여장의 삐라를 북에 보내고 있다. 올 4월부터는 비닐로 만들어진 삐라에 미화 1달러나 중국돈 5위안, 10위안을 넣어서 보내고 있다. 최성용 씨가 이끄는 납북자 가족모임은 지난 10월부터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함께 북측에 삐라를 보내고 있다.

이민복 씨가 주동하는 기독탈북인연합회는 지난 2004년부터 1년에 100만여장의 삐라를 북측에 보내다가 최근에 활동을 접었다. 탈북인단체총연합회(한창권 대표) 역시 북측에 삐라를 계속 보내 왔다.

■ '삐라'= 감성의 소구(?)

선전, 선동을 위해 감성적 접근에 집중하던 삐라의 내용 역시 바뀌고 있다. 여전히 ‘선동’과 ‘심리적 교란’을 목적으로 하는 ‘감성적 접근’이 주요 내용이만, 사실관계를 위주로 한‘이성적 접근’역시 적지 않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북측에 살포하는 ‘사랑하는 북녘의 동포들에게!’에는 6.25가 남침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 최근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 등 사실(fact)에 기반한 서술이 적지 않다. 물론, “당신들을 (중략) 노예로 만들었습니다”와 같은 감성적이고 가치판단적인 내용도 다수다.

납북자가족모임이 북측에 보내는 ‘사랑하는 북녘의 동포와 슬픔과 분노를!’은 내용의 절반이상을 납북 어부의 신원과 명단에 할애하고 있다. 이들은 ‘삐라’의 독자에게 납북자의 소식이나 생사여부를 알려줄 것을 부탁하며 단체주소와 전화번호를 명기했다.

통일부 관계자에 따르면 기독탈북인연합회가 북측에 보낸 ‘삐라’의 내용은 대부분이 요한복음, 누가복음 등의 성경구절이며, 내용은 예수의 생애 등을 적은 것이다. 순수한 포교목적의 메시지로 내부의 ‘심리적 교란’등을 목적으로 한 감성적 접근이나 비방의 내용은 거의 없었다.

탈북인단체총연합회의 ‘삐라’는 김정일의 기쁨조 운영과 독재체제 비판 등의 감정적 비판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여전한 '종이폭탄'의 효과

한국전쟁이나 2차 세계대전에서 ‘들리지 않는 총성’, ‘종이폭탄’, ‘심리전의 보병’으로 불렸던 ‘삐라’의 파급효과는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박상학 자유북한연합 대표는 “황해도 등 북한지역에 남한에서 보낸 삐라에 달러나 위안화가 들어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남북군사회담에서 북한이 삐라를 들고 나와 문제제기를 한 것 역시 삐라의 파급효과를 보여준다. 통일부는 19일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대북 삐라를 살포하는 단체들에 장관명의의 공문을 보내 자제를 요청했다.

<한국전쟁 기간 삐라의 설득 커뮤니케이션>을 발표한 김영희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연구교수에 따르면 한국전 당시 점령지에 있던 남한출신 주민들은 유엔군이 한국군을 지원하고 있다는 삐라를 보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었다. 1950년 10월의 한 조사에서는 자진해서 항복한 포로의 42.7%가 삐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하는 등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전의 기본원리인 단순화와 반복의 원리에 충실했던 당시의 삐라는 전세정보 등 객관적 서술도 있었지만 귀순권유, 향수자극을 통한 전의상실 유도, 내부 이간 목적의 감성적 접근으로 심리전 효과를 발휘한 경우가 많았다.

김영희 교수는 “삐라는 감성적, 이성적, 위협적 소구를 포함해 복합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당시 유엔군이 귀순시 안전통행을 보장한 삐라는 많은 인민군이 몰래 보관하는 등 삐라가 심리전의 주 매체로서 효과를 발휘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전문가는 “구호물자나 공장 등을 통해 남한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차단돼있지 않아 북한 주민들 역시 어느 정도 자신의 현실을 인지하는 상태에서, 내부교란을 유도하는 삐라가 사회불안을 조성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