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쓴 방송과 드라마책과 사람에 관한 글 비평보다 에세이에 가까워정여울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16,000원

이 책의 저자 정여울은 2004년 봄 <문학동네>를 통해 데뷔한 젊은 평론가다.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 방현석론’으로 등단한 그는 이후 각종 영화와 대중문화 잡지에 대중매체에 관한 칼럼을 기고했다.

많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이력과 상관없는 영역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고 있지만, 정여울의 이력은 그의 칼럼을 읽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만큼 소설을 비롯한 글에 대한 비평은 치밀하지만,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매체에 관한 그녀의 통찰은 일반적이다.

신간 <미디어 아라크네>는 방송과 드라마, 책과 사람에 관한 글이다. 비평보다 에세이에 가깝다. 책은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된다.

드라마를 통해 대중문화를 분석하는 1장과 ‘88만원세대’,‘참고서 신드롬’과 같이 키워드를 통해 또한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2장, 소설과 영화 콘텐츠를 분석한 3장, 수전손택, 니체 등에 관한 생각을 적은 4장 그리고 인터뷰로 구성된 5장이다.

저자는 드라마, 코미디 등 우리에게 친숙한 대중문화를 매개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우리가 잃었던 ‘꿈’을 재접속하게 하고,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새로운 가족의 등장을, <무릎팍 도사>에서 가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따스함을, <사모님>에서 자신의 슬픔을 유머로 웃어넘긴다.

그러나 이런 시선은 전혀 새롭지 않다. 이미 <베바>의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시작했을 때 인터넷 포털에서는 <베바>의 성공원인에 대한 분석기사가 즐비했고, <하이킥>과 <무릎팍 도사>역시 마찬가지의 현상을 겪었다.

정여울 칼럼의 특징은 통찰의 날카로움이 아니라, ‘왜 이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는가?’에 대해 누구나 느끼고 있는 감정을 글로써 표현해 내는 정제된 언어 사용 능력에 있다. ‘수사학적 탐미주의’ ‘문장의 건축술’등 비평에 사용되는 언어는 저자의 책을 한층 우아하게 만들어 준다. 그녀의 글이 대중의 공감대를 얻지만 칼럼이 주는 ‘새로운 시선이 주는 통쾌함’을 선사하지 못하는 이유다.

4,5 장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지성인이 등장한다. 예술을 사랑하고 실천함으로써 인간임을 깨닫게 한 수전 손택,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꾼에 근접한 18세기 문인 이옥, 철학자 니체와 경제학자 정운영, 그리고 이탁오다. 진중권, 김형경, 김연수, 권여선은 인터뷰 형식으로 엮었다. 이 아홉 명에 관한 에세이를 통해 저자는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드러낸다.

정답이 없는 ‘문화’는 해석이 쉽지 않다. 비평가가 열심히 텍스트와 현상에 대해 분석을 해도 창작자가 “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50~60년대 문학 기자를 했던 연출가 임영웅 씨는 이에 대해 “소설과 시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그림과 음악은 의도를 알기가 쉽지 않다.

많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작자의 의도를 읽기 쉬운 시와 소설도 독자나 비평가가 잘못 읽고 있는 것도 상당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비평에 정답은 없으며, 때문에 문화를 소개하는데 겸손함과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임 연출가의 이 말은 정여울의 책을 읽는 데도 적용할 수 있다.

대중매체에 대한 그녀의 비평이 모두 옳거나 모두 그른 것 일수 있다. 그리고 정여울의 칼럼을 소개하거나 읽는 모든 매체의 기사가 그럴 수도 있다. 이 글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