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명화·이매방 등 명인의 연대기 통한 춤 현대사의 재조명

세상에는 갖가지 종류의 춤이 차고 넘친다. 춤을 잘 추는 사람은 스타가 되고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시대다. 사람들은 춤을 더 잘 추기 위해,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춤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리고 결국 춤의 수준을 비범의 위치까지 끌어올려 보는 이들을 감탄시킬 정도에 이른 사람을 우리는 춤의 명인이라고 부른다.

소박한 제목이 오히려 인상적인 <춤과 그들>(동아시아 펴냄)은 이러한 춤의 명인들에게서 직접 듣는 춤의 현대사에 얽힌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춤의 현대사’라고 하면 거창한 듯해 보이지만, 실은 이들이 어린 시절 어떻게 춤에 입문하게 됐고, 어떻게 그것을 숙련시켰으며, 결국 대가의 경지에 이르게 됐는가에 대한 연대기적 서술이다.

주목할 것은 이 연대기의 처음이 멀리는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해방 후, 6.25전쟁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를 아우르는 춤 명인들의 삶의 궤적은 그 자체로 한국 현대사에 다름아니다. 큰 역사에서 작은 역사로의 전개가 아닌, 인물의 연대기를 통한 현대사의 재조명이다. 여기서 춤은 그것을 이어주는 훌륭한 매개물의 역할을 한다.

대개 최승희, 조택원에서 시작하는 여느 무용사 텍스트와는 달리, 저자의 고민은 그간 인터뷰해온 춤꾼들을 어떤 순서로 배치할 것인가에서부터 시작된다. 비록 주류 무용사에서는 벗어나 있었지만 업적의 경중을 가려 상석(上席)을 정하는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저자의 선택은 ‘기생이 되더라도 춤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던 이들’이다. 이른바 조선말 권번에서 춤을 배운 인물들이다. 권번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는 오늘날에도 한국춤의 뿌리에 관한 부분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 가장 앞에 배치한 것은 저자의 무용사에 대한 이해와 신념을 보여주는 단초가 된다.

춤이 기생의 전유물이던 시대, 불행히도(?) 춤에 매료된 소녀들이 담장 너머로, 호랑이 같은 아버지 몰래 ‘도둑춤’을 배워 춤을 추게 되는 과정은 절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명창이 되고픈 욕심에 권번 똥물을 먹은 무형문화재 제9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인 권명화 선생, 결혼 후 남원 권번에서 춤춘 과거를 65년 동안 숨겨온 조갑녀 선생 등의 파란만장한 사연들은 예인(藝人)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그들의 운명을 느끼게 해준다.

“나중에 죽을망정 춤추는 순간이 좋응게, 춤을 간볼 때가 좋아….” 저자는 춤에 대한 애정어린 감정을 토로하는 80살 장금도 선생의 소녀 같은 육성을 담아내며, 그들에게 춤은 어떤 의미인가,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춤이란 어떤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두 번째 장인 ‘입무(立舞), 춤을 세우다’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춤계에서 화려한 명성을 쌓아온 춤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들의 이력은 과연 화려하며 오늘날까지도 그 줄기를 춤계 곳곳에 내리고 있을 정도로 그 위상도 대단하다. 때문에 이들을 생략하고 한국 춤 역사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1- 이매방
2- 권명화
4- 김진걸의 산조
3- 태평무를 추는 강선영

저자는 신무용의 양대산맥인 최승희, 조택원, 근대 한국춤의 아버지인 한성준의 유지를 이어받은 부담을 안은 이들의 생을 서술하며, 원형 보존과 함께 자신만의 춤 색깔을 찾아난 성과에서 이들이 한국 춤의 근간으로 불리게 된 이유를 찾아낸다.

춤의 본향인 부산과 호남에서 여전히 춤을 지키고 있는 대가들에게도 저자의 관심은 고루 미친다. 우봉 이매방 선생처럼 ‘요염한 춤’으로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들의 춤 여정은 그 성격은 달라도 통하는 데가 있음이 저자의 질문으로 밝혀진다. 남성춤이 강세인 부산에서도 성별을 불문한 춤 정신을 이어오고 있는 여성 춤꾼들에 대한 관심도 잊지 않는다.

명인들은 춤을 추게 된 시작에는 자신이 원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이들의 춤 인생에는 어떤 ‘운명’ 같은 것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춤은 기생의 것이라는 낙인을 피해, 최승희의 제자라는 주홍글씨를 감추며, 여자들이나 추는 춤을 왜 남자가 추냐는 시선을 넘어, 이들은 그렇게 운명적으로 춤을 추어왔다.

그래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춤 역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위상이나 업적이 아니다. 왜 이들은 그렇게 춤을 출 수밖에 없었는가, 그리고 이들의 어떤 점이 이들을 대가로 만들었는가이다.

주로 ‘무용사’ 교재를 통해서, 혹은 신문 단신의 부음 소식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전설적인 춤의 명인들은 저자의 세밀한 시선을 따라 현재로 이어지고, 그렇게 살아있는 춤의 역사가 된다.

때문에 5W1H의 기계적인 서술은 철저히 배제된다. 교재에도 나오지 않는 명인들의 직접화법을 통해 주류 춤 역사가 간과했던 당시의 사실들이 1세기를 지나 우리 앞에 펼쳐진다. 명인들의 말투가 그대로 담긴 구어체 문장들은 그대로 구술사 아카이브에 수록될 만한 좋은 텍스트가 된다.

문화부 기자로 20여 년을 살며 그중 절반을 무용 담당 기자로 활동한 저자는 그만큼의 시간을 춤 현장에서 보내며 이 땅의 춤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저자의 ‘춤’에 대한, ‘그들’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은 책 속 인물들이 자신의 치부를 과감하게 털어놓고 있는 모습에서 발견된다. 그만큼 저자가 보여준 관심에 무한한 신뢰로 답하는 현장인 것이다.

이 책이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인이 세상을 떠났고, 두 명인은 현재 병석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춤 역사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이들도 조용히 역사의 뒤로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이들에 대한 본격적인 조명작업은 쉬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춤과 그들>은 이러한 태만과 지체에 대한 질책과 채근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