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사관앞 줄서기 없어진지 한달항공·여행사 마케팅 잰걸음… 관광바람 아직은 잠잠

10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로 미 대사관, 창구 앞이 한산하다. 오전 8시부터 업무를 시작하는 대사관에서 관광비자 인터뷰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새벽부터 장사진을 이루던 옛 모습과 대조적이다. 특히, 여행비자를 받아 미국여행을 떠나려던 사람이 많은 휴가철 미 대사관 앞은 길게 늘어선 줄로 진풍경을 연출했었다.

대사관 앞에서 만난 공 모(44) 씨는 “미국에 벌여놓은 사업이 있어 투자비자 문제로 (대사관에) 종종 들른다”며 “오후에도 길게 늘어섰던 줄이 없으니 한가롭고 좋다”고 말한다. 창구직원은 “예전과 같이 줄서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며 “지금은 학생비자 건으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라고 분위기를 전한다.

지난 11월 17일, 미 비자면제 프로그램이 시행된 지 한달. 관광객이 대폭 늘 것으로 예상해 항공사와 여행사가 미국 관련 상품을 쏟아내 미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고 있으나 미국 발(發) 경제위기의 여파로 현재까지 관광객 숫자가 큰 폭으로 늘고 있지는 않다.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Visa Waiver Program; V.W.P.)은 미 정부에서 지정한 국가 국민에 대해 최대 90일간 비자 없이 관광, 상용 목적에 한해 미국 방문을 허용하는 제도다. 한국은 그동안 국가적 위상이나 경제력, 낮은 비자 거절율에 걸맞지 않게 이 프로그램에서 제외돼있었으나 부시 정부가 뒤늦게 재검토해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 '무비자 특수' 기대, 분주한 항공×여행사

항공사와 여행사는 ‘무비자 특수’를 기대하고 다양한 상품개발을 해 미국문화와 관광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항공사는 미국항로를 대폭 증설 운항하는 등 공격적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한항공은 탤런트 한효주 씨를 동원해 취항 지역을 중심으로 미국의 다양한 문화와 관광지를 소개하는 감각적인 드라마를 제작해 케이블 방송에서 상영하고 있다.

또, 이 영상을 편집해 광고를 만들어 신문과 방송에 내보내고 있다. 대한항공은 11일과 12일 인천-워싱턴 노선과 인천-샌프란시스코 노선을 각각 주 4회에서 7회로 전환해 매일 증편 운항체제로 전환했고, 지난 9월 고유가 여파로 운항을 중단했던 라스베이거스 노선은 16일부터 주 3회 운항 재개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인천-로스앤젤레스(L.A.) 노선은 16일 주 11회에서 14회, 인천-시애틀 노선은 11일부터 주 3회에서 4회, 인천-샌프란시스코 노선은 24일 주 4회에서 5회로 각각 증편 운항하기로 했다. 아시아나 항공 역시 비자면제 프로그램 이용객에게 업그레이드 쿠폰과 기념품을 제공하는 등 ‘무비자 특수’를 노린 마케팅에 열심이다.

여행사들도 미국지역 신혼여행 상품을 개발하는 등 잰 걸음이 한창이다. 하나투어는 하와이 5일 여행상품과 미 서부 주요도시, 태평양 연안 8일 여행상품을 1년전 가격으로 내놨다. 모두투어는 아시아나 항공과 함께 <무비자 오신 날>이라는 경품제공 행사를 하고 있으며 하와이 신혼여행 상품과 엘에이(L.A.)를 비롯한 서부지역 여행 신상품을 내놨다.

아시아나 항공 관계자는 “영화, 드라마를 비롯한 문화상품의 영향으로 미국 상품에 대한 수요는 아직도 충분한 상황”이라며 “시애틀,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3개 노선을 중심으로 상황을 지켜봐가며 증편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 예상 밖 '썰렁한' 반응, 엇갈리는 전망

기대와 달리 관광특수는 쉽사리 일어나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에 따르면 17일 이후 증편항로(인천-시애틀,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라스베이거스) 탑승률(왕복기준)은 전년동기 대비 평균 4.6% 느는데 그쳤다. 아시아나항공은 본보에 건낸 자료에서 17일 이후 증편항로(엘에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탑승률(왕복기준)이 전년동기 대비 평균 14.3%로 소폭 상승한 것으로 밝혔다. <표>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비자 거절율이 가장 낮은 나라중의 하나였다는 점만 봐도 미국여행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거의 다 다녀온 상황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경기불황 때문에 예약율이 2~3% 정도 소폭 상승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외교통상부 의뢰로 현대경제연구소가 작성한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VWP) 가입의 기대효과> 보고서에서는 다른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기구 사례 평균을 근거로 미국방문자 수가 가입연도인 2008년에 8.7% 증가한 87만 6,000여명, 가입 1년 후인 2009년에는 12.7% 증가한 98만 8,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업계나 한국관광공사의 기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예측이다.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의 국정감사 질의에 대해 한국관광공사는 답변서에서 비자면제 프로그램(VWP) 시행 이후 방미 한국인수는 2009년 20% 정도 증가한 100만명 내외, 2011년에는 현재의 두배인 160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이종희 대한항공 총괄사장은 지난달 17일 인천공항에서 있었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년에 한국손님 80만명이 미국에 갔다. 이 숫자가 2-3년 내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낸 바 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