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였다.

지난 몇 달간 모든 국민이 그러하듯 격동의 시간들을 보낸 탓에, 가는 해의 마지막 끝까지 여러 일들을 붙잡고 있었던 탓에 한 해를 마무리하고 뒤돌아 보고 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새해가 다가서니 다소 당황스럽다. 잎갈나무를 골랐다. 이 나무이야기와 함께 새해의 시작을 해야겠다.

잎깔나무가 우선 새해 첫날 마음에 들어 온 것은 올 곳은 침엽수여서이다. 잎갈나무는 깊은 산야나 먼 고원에 자란다. 이런 저런 환경에 서로 적응하겠으나 자신을 굽히지 않고 20m이상을 쭉쭉 곧게 올라간다. 어려운 세상에 그래도 중심을 잃지 않고 올바르고 정의롭게 살아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싶다.

잎깔나무는 지금 잎이 하나도 없이 섬세한 줄기만 드러나 있다. 소나무나 전나무처럼 침엽수이지만 낙엽이 진다. 지금 처럼 춥고 어려운 겨울을 보내지만 어김없이 새봄이 찾아오고 그 굳은 줄기 사이에선 가장 순결하고 보드라운 연두빛 새순이 돋아나고 이내 무성해지며 가을엔 그윽한 갈 빛으로 물들것이다.

그래서 잎을 간다하여 잎갈나무가 되었으며 이깔나무라고도 한다. 아무리 모질게 어려워도 이내 아름답고 눈부신 봄은 반드시 돌아 온다는 희망을 말하고 싶다.

겉치례나 얄팍한 요령은 멀리하고 싶다. 잎갈나무는 침엽수여서 짭은 바늘모양의 잎들이 모여난다. 꽃이 피지만 풍매화이니 화려한 꽃잎으로 누군가를 유인하고 하는 일을 포기하고 열심히 꽃가루를 날리고 열매를 꼭 닮은 암꽃은 그 인연을 소중히 키워 후대를 이어간다. 세상이 복잡하니 이 정직함이 유난히 좋다.

둥글고 작은 솔망울속엔 좁은 날개를 가진 씨앗이 칸칸이 들어있다. 4월에 핀 꽃은 9월에 익어 결실한다. 제때를 알아 어김없이.

잎갈나무는 아주 익숙한 이름의 우리나무이지만 이 나무를 정확히 아는 이는 드물다.

남쪽에는 거의 자라지 않고 주로 중북부지방에 분포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무는 낙엽송이라고도 불리우는 일본잎갈나무이다.

남쪽에서 많이 심어 숲을 이루며 많은 좋은 일을 한 나무이지만, 그래서 칭찬하고 가까지만 그렇다고 그 나무가 본질이 태초부터 이 땅에서 자란 자생나무라고 가릴 순 없다. 또 비슷한 나무로 정말 남무지방에만 심어 키우는 개잎갈나무가 있다.

가짜 잎갈나무란 뜻으로 그런 이름이 붙었으며 히말라야시다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데 이 나무는 잎 모습은 비슷하지만 상록성이다.

가로수로 유명한 훌륭한 나무도 있지만 그래서 모두 넓은 의미의 우리 범주 안에 넣어 말할 수 있는 친근한 사이이지만, 우리에겐 비록 자주 만날 수 없지만 백두대간을 이은 이 땅의 줄거리에 의연히 자라는 잎갈나무의 의미를 넘어설 수 없다. 세계를 살아가고 모두 형제처럼 돕고 살아가야 하지만 민족의 혼을 팔아서는 안되는 일이듯 말이다.

선배 한 분이 금강산 이북에만 있다는 이 나무가 남쪽의 어딘가에서 보신 듯 한데 정확해야 하니 가보라고 하셨는데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올 해 꼭 실천하고 싶은 일의 하나이다. 잎갈나무의 곧은 줄기위에 돋아날 새 잎을 상상하며 새해에 모든 이의 가슴에 희망과 기쁨이 가득하길 기대해 본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