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주 지음/미술문화 펴냄/1만3,000원마티스·피카소 등 10人의 작품과 인생 총체적으로 읽어내

‘색채’에 조예가 깊었던 대문호 괴테는 1810년 <색채론>이라는 책을 펴냈다. 20여 년간의 연구를 집대성한 것으로, 그동안 세상을 지배해온 색채를 바라보는 ‘뉴턴’의 시각에 메스를 들이댄 이론이었다. 뉴턴에게 색채는 언제 어디서나 같은 가치와 의미를 가진 ‘객관적인 실체’였던데 반해 괴테는 색채가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주관적인 영향’에 주목했다. 빨강이 열정을, 파랑이 차분함을 대신한다는 색채적 효과에 처음 주목했던 사람도 그다.

노랑으로 대변되는 빛과 파랑으로 여겨지는 어둠의 경계에서 색깔이 생겨났다고 본 괴테는 당시 그의 예상과는 달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수많은 화가들이 그의 <색채론>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를 단초로 현대 화가들의 ‘색’을 책 위에 펼쳐놓은 책, <노란누드>가 발간됐다. 그동안 미술서적이 조형미나 사상적 흐름에 따른 사조로 화가에 접근하거나, 체험기 형식의 에세이로 미술에 다가선 것과 달리, 색채를 매개로 현대작가들의 작품과 인생을 총체적으로 읽어낸 신선함이 돋보인다.

현재 파리 1대학 ‘미학 그리고 예술과학’ 박사과정에 있는 저자 최영주는 불과 두 달 전, 색채에서 찾아낸 과학적, 심리학적 의미를 담아낸 <색깔이 속삭이는 그림>을 펴내며 색채로 읽는 그림의 이야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월 초에 발행된 <노란누드>는 같은 시각을 견지하되, 10명의 현대 화가에 집중했다.

20세기 색채의 혁명을 일으킨 야수파의 마티스를 시작으로 건축학도에서 니체와 뭉크의 영향을 받은 표현주의회화의 선봉장이 된 키르히너, 입체파의 시대를 연 피카소, 20세기 회화운동 오르피즘(입체파에서 발전한 경향으로 보다 감각적이고 색채적)을 이끈 들로네, 미래파 화가 루솔로와 발라, 색채가 주는 음향에 주목했던 칸딘스키, 절대주의를 이끌었던 말레비치, 긴 목을 가진 여인의 그림이 인상적인 모딜리아니, 그로테스크하고 강렬한 색을 표출해온 베이컨 등이다.

보색이니, 색의 진동이니,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색’의 이야기는 철학, 과학, 심리학을 넘나들며 색이 가지는 ‘의미’와 그 의미에서 가늠한 화가 일상의 단편까지도 해독해낸다.

파란 색을 여성의 나신에 칠해낸 마티스의 ‘파란 누드’에서 저자는 오싹한 느낌의 파란색이 한없이 신비한 분위기를 감돌게 한다고 말하며 ‘파랑은 공간적, 사회적 분리를 뜻해 과거 귀족은 파란 피를 가졌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엘케 뮐러 메이스의 이론을 가져다 놓는다.

청색을 좋아해 1901년부터 4년간 청색시대를 열었던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을 다룬 대작 <게르니카>에서 검정과 흰색만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피카소는 ‘색채는 어떤 구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음악을 그림으로 옮겨낸 칸딘스키는 물감 하나하나의 색에서 그만의 소리를 찾아내곤 했는데, 죽음이 아닌 가능성으로 찬 침묵의 흰색, 군악대의 우렁찬 노란색, 첼로와 흡사한 짙은 파란색, 조용하고 넉넉하면서도 중간 정도의 저음을 담은 바이올린 음색을 초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일화만 보더라도 화가가 단지 색을 시각적인 효과로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있다. 멀게만 느껴지던 현대 미술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듯하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