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저기 눈소식이 가득한데 광릉숲엔 이 겨울에 눈이 인색하다.

어른이 되어 바뀐 것 중의 하나가 무작정 눈이 내리면 좋던 것이 좋은 마음과 출퇴근을 비롯한 현실적인 걱정이 동시에 든다는 점인데 새해의 시작이어서 인지, 눈덮인 산야처럼 하얀 백지에서 새로 시작되었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식물중에도 순백의 식물이 있다. 수정처럼 희다하여 이름도 수정난풀이다. 그저 흰 꽃이 피는 것이 아니고 꽃이며 줄기며 잎이며 모두 흰색이다. 그것도 속이 보일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맑은 백색이다.

그래서 깊은 숲에서 수정난풀을 만나면, 그리고 그것이 첫 번째 만남이었다면 정말 신기하다. 세상에 이런 식물이 있을까?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정난풀이 식물일까 아닐까를 의심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식물 그것도 고등한 식물이다.

식물에 대한 지식있다면 초록색 없으면 엽록소가 없는 것이고, 엽록소가 없으면 광합성을 하지 못하여 양분을 못만드는데 어떻게 살아나가느냐고 물을 수 있다. 대답은 기생식물이기 때문이다.

겨우살이처럼 눈에 보이게 기생하는 뿌리를 기주식물에 박고 양분을 가로채는 것이 아니고 땅속에서 다른 식물과 뿌리로 연결되어 그 식물에 의존하여 산다. 아직까지 땅속에서 연결되어 양분을 제공하는 식물이 무엇인지 밝혀져 있지 않아 활엽수가 우거진 좋은 숲속의 어떤 식물친구가 그 파트너인지는 알 수 없다.

수정난풀은 드물지만 우리 나라 거의 전역에서 자라고 이웃한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에서도 발견된다. 노루발과에 속하며 여러해살이풀이어서 한 자리에 또 나고 또 난다.

다 자라면 크고 작은 것들이 여러게 모여 올망졸망 자라는데 개체에 따라 차이가 조금 있지만 한뼘 정도 높이가 된다.

수정난풀은 봄에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가 여름이 무르익을대로 익을 즈음 고개를 숙인 채, 목덜미부터 쑥 올라온다. 낯설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비늘조각처럼 퇴화한 잎이 마주 달리고 줄기 끝에서는 고개를 잔뜩 숙인 꽃이 달린다.

꽃도 자세히 보면 종모양의 꽃잎과 꽃받침이 구분되며 재미있는 것은 암술머리는 남색인데다가 배주가 투명하여 씨앗이 될 부분이 비쳐 보인다는 것이다. 가을이면 열매도 달리며, 땅속에 감추어진 덩이같은 뿌리만큼은 갈색이다.

수정난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당연히 식물의 흰 색깔 때문에 이 수정의 맑은 이미지와 연결된 것 같다. 지방에 따라서는 수정란, 석장초, 수정초라고도 부르며 학명 모노트로파스트럼(Monotropastrum)은 꽃이 한쪽으로 굽은 식물과 비슷하다는 뜻을 가진 희랍어로, 고개숙여 피는 꽃의 특성에서 유래되었다.

더러 먹기도하고 약으로도 쓴다고 알려져 있다. 전초를 허증으로 나는 기침과 허약자의 보신약으로 쓰며 구상난풀은 전초를 기침, 기관지염에 쓰며 지하부를 이뇨, 최토제로서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워낙 발견 자체가 어려운지라 구체적인 용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깨끗한 것은 더러움도 쉽게 보이는 것인지 사진을 들여다 보니 순백의 잎에 세월과 물리적 환경에 치인 흔적이 보인다. 새해에 시작된 첫 마음들에 생기기 시작한 조금한 균열처럼. 그래도 수정난풀은 흰색이듯 우리 스스로도 첫마음을 놓치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다시한번 결심해 본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