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백성들이 묘비로 써서 붙은 이름인가

"비목"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리나라의 슬픈 가곡이다.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 한국전쟁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의 무덤을 보고 한명희씨가 가사를 붙인 비목(碑木)은 말 그대로 초라한 나무 비이다.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의 주인공 비목(比目)은 눈이 하나밖에 없어 두 마리가 함께 다녀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전설상의 물고기이다.

나무 비목은 녹나무과에 속하는 우리의 산에서 자라는 낙엽이 지는 큰키나무이다, 왜 이나무를 비목이라 부르는지는 아직 찾지 못했다. 어딘가에 뜻을 유추할 수 있는 한자 이름이 남아 있지 않을까 궁금했지만 한자로는 백목(白木)이라고도 하고 중국식물지엔 홍과산호초(红果山胡椒)라고 부른다. 근거 없이하는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이 나무 역시 목재로 이름을 날리는 귀한 나무가 아닌 탓에 그저 옆에 있는 적절히 굵어지고 단단하며 향기는 나무로 가난한 백성들의 볼품없는 묘비를 만들었기에 붙은 이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비목은 봄이면 연노란 꽃으로, 여름이면 반질반질 아름다운 잎으로 겨울이면 구슬같은 붉디 붉은 열매와 노란 단풍빛으로 물들어 어느 때 보아도 새로운 아름다움을 준다. 사실 비목을 처음 보았을 땐, 몇 가지 선입견이 깨어졌는데 무엇보다도 잘 가꾸어진 정원에 어울릴 듯한 아주 단정하고 품격있는 나무가 뜻하지 않은 야산에 후미진 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자라고 있다가 맞닥들여서이다. 중부지방에서 조금 남쪽(그렇다고 남부지방은 아니다. 경기도의 청계산, 강화도 같은 곳에서도 발견된다.)에 자라기 하지만 상록성 활엽수처럼 두텁고 반짝이는 잎이 알고 보면 가을에 물들고 낙엽지는 변화를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목은 생강나무와 같은 집안식물이다. 그래서 알고 보면 공통점이 많은데 연노란 꽃들이 모야 달린다는 점. 다만 생강나무는 꽃이 지고 잎이 나지만 비목은 꽃과 잎이 함께 난다. 또 식물체에서 냄새가 나는 것도 이 집안 특징이니 당연하긴 하지만, 비벼보지 않아도 때론 가까이 다가가면 코끝에 매운 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잎맥이 크게는 셋, 그리고 약한 깃털모양의 맥이 보인다.

쓰임새를 살펴보면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추위에 약한 단점에 건조를 피해주기만 하면 아주 좋은 조경수가 될 수 있다. 햇볕을 좋아하지만 그늘에서도 잘 견딘다. 한방에서도 이용하는 첨당과라고 하여 부종, 이뇨, 해독 같은 여러 증상에 처방한다고 한다. 새로 난 어린 잎은 데쳐서 물에 담가 떫은맛을 없애고 나물로 먹기도 한다. 목재는 무겁고 치밀하며 갈라지지 않아 기구재나 조각재로 사용된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특이한 점은 이 식물이 암수딴그루란 점이다. 언뜻 보면 비슷한 꽃이지만 작은 꽃들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면 수술이 9개로 많은 꽃이 수꽃이고, 가운데 굵어진 1개의 암술이 있는 것이 암꽃이다. 산에서 봄에 만난 비목의 여자일까 남자일까를 찾아보는 재미를 이 봄 산행에서 덧 붙여 보면 어떨까. 아마도 나무의 신성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좋은 체험이 될 것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00@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