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케인스 정신을 배우자역사의 굴곡 따라 바뀌는 인식과 경제 이론의 탄생 시간 순으로 소개

■ 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미국발 경제위기로 고전경제학자들의 이론이 회자되고 있다. 특히 자본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가 위기의 대안으로 부각된다. 그는 사후 60년이 지난 2008년에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표지를 장식했고,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안 카드로 제시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도 스스로 케인스주의자임을 자처하면서, 케인스는 '확실한 대세'로 떠올랐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그러나 "케인스 모델은 한계를 지닌다"고 말한다. 케인스 이론이 사회 위기에 대한 통찰을 일정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케인즈 이론의 핵심은 위기 진단과 해법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와 작동 원리에 대한 특정한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케인스의 대표저서인 <화폐, 고용과 이자에 관한 일반 이론>에서 '일반'은 그의 이런 인식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케인스 경제학은 화폐와 시간이 개입되는 한, 경제주체로서 인간 행위는 무지와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시장은 불안정한 상태다. 경제주체들의 선택은 불확실성의 조건에서 이뤄지고 화폐의 기능은 교역이 아니라 가치 저장의 수단으로 부각된다. 돈은 투자보다 투기적 목적으로 보유되며 이로 인해 발행하는 투자 수요의 불안은 고용과 산출이 요동치는 결과를 낳는다. 케인스는 산출과 고용은 공동체 지출 양에 달려 있기 때문에 정부는 경기부양책을 통해 유효소비를 증가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케인스의 사상과 이론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파시즘, 볼셰비즘, 대공황 등의 혼란에 대한 위기의식과 실천적 개입에서 비롯된다. 저자인 스키델스키는 케인스가 자유주의자에서 수정자유주의자로 변모했으며 화폐 수량설의 개량자에서 비판자로 바뀌었고 시장에서 국가로 관심사를 이동시켰다고 말한다. 케인스의 이런 변화는 여러 관계를 통해 공공정책에 관여한 이력에서 비롯된다. 그는 케임브리지 사람이지만 동시에 화이트홀과 런던 금융권 사람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유연한 실천 지식인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영국 귀족가문인 그의 가계도에서 시작하는 '케인스 이야기'는 대학 학부시절과 결혼 등 개인사와 양차대전, 대공황 등 거시사가 씨줄과 날줄로 엮이며 시간 순으로 소개된다. 역사의 굴곡에 따라 바뀌는 케인스의 인식과 이로 탄생하는 경제학 이론, 케인스가 살았던 당대의 학계, 문화계, 정계의 유명 인사들이 등장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책을 통해 저자는 케인스가 내놓은 해답이 아니라, 그 정신을 배우라고 말한다. 케인스는 현실에 밀착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능숙한 경제학자였지만, 지금 독자가 할 일은 그의 대안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통찰과 태도를 배워 지혜를 모으는 일이라고 말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