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신간] 스탠리 박의 고전영화 여행, 클래식무비 365 스탠리 박 지음 / 1만 7000원 / 북인 펴냄고전영화 365편을 작가 자신의 관점으로 아홉 장르 분류 가볍게 리뷰

누벨바그의 기수인 프랑수와 트뤼포는 씨네필(Cinephile, 영화애호가)의 3단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첫 번째는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것이다. 다음은 그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것. 마지막은 직접 영화를 찍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 공식은 거의 변하지 않은 듯하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심취해온 이들은 우선 아무런 기준없이 '무조건 많이'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이때 이들은 많은 영화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은근한 자부심을 느낀다. 영화에 대해 글을 쓰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보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이 과정에서 이론적 학습을 통해 습득되고 정리가 된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씨네필들은 2단계에 머무르고 만다. 어느 분야건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것은 상당한 위험이 있을뿐더러, 2단계만으로도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얼마든지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씨네필에게 이 단계에서의 영화들이란 대개 동시대의 영화들이 아니다. 문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영화도 빠지면 빠질수록, 명작들은 고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고전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TV에서는 EBS 채널을 통해, 극장에서는 서울의 아트시네마나 필름포럼을 통해 접할 수 있지만 시청률이나 수익성의 잣대로 끊임없이 그 존재를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씨네필들은 잠재적 씨네필들이 좋은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클래식 무비 365'는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보충재로서 나온 책이다. 그 자신이 씨네필인 스탠리 박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보았던 고전영화 365편을 모아 자신만의 관점으로 웨스턴, 크라임, 로맨스, 드라마 등 아홉 장르로 분류했다. 서양영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메밀꽃 필 무렵', '하녀' 같은 한국영화와 함께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등 일본영화의 거장의 작품들도 빠짐없이 리스트에 들어가 있다.

물론 씨네필과 고전영화라는 두 가지 키워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익숙한 세대에겐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가 택한 저술 방식은 자신들만의 전문적인 시선이 아니라 가벼운 리뷰 방식이다. 작품의 선정도 명작의 교과서라고 할 만한 작품들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당시 많은 인기를 모았던 대표적인 대중영화들을 균형있게 구성했다.

그럼에도 책은 책이고, 영화는 역시 영화다. 어떤 빼어난 영화 글이라고 해도 그것을 읽는 것은 영화를 만나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고전영화를 처음 만나는 이들에겐 입문서가 되고, 씨네필들에겐 감동을 환기시키는 참고서가 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