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Culture] 명품·화장품 쇼핑 후 동대문·남대문시장 찍고 인사동으로

일본 치바현에 사는 대학 4년생 카시오(23ㆍ여) 씨는 동기 셋과 함께 한국으로 졸업여행을 왔다. 그는 어디서 뭘 할까. 2박 3일 관광일정 가운데 2일째인 그의 여행스케줄 메모는 빽빽하다. '전복죽 아침식사 – 명동 롯데백화점 면세점 - 남대문시장 – 명동 점심식사 – 동대문시장 - 대형마트 – 갈비 저녁식사 – 에스테'

카시오 씨를 만난 3일 오전 10시께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입구는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10명 중 9명은 엔고(円高) 특수를 타고 온 일본인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방한 외래객수 동향>에 따르면 1월 중 방한 일본인은 전년동기 대비 55.3% 늘었으며 이 가운데 20대가 19.6%를 차지했다.

'쇼핑'과 '에스테'는 취재에 응한 20대 일본인 대다수의 관광 목적이다. 이들은 서울 남대문시장보다는 동대문시장을 선호한다. 서울 인사동은 세대를 불문하고 일본인 관광객이 모두 좋아하는 코스다.

'쇼핑'과 '에스테'

'쇼핑'은 한국을 찾는 20대 일본인의 관광 목적 첫 번째다. 지난해 1500원대였던 환율은 최근 1600원대까지 치솟았다. 일본인은 동일한 제품을 한국에서 훨씬 싸게 살 수 있다. 롯데백화점은 1월 중 명품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71% 증가했다고 밝혔다.

3일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면세점은 일본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은 루이비통을 비롯한 명품 잡화 매장, BB크림을 비롯한 기초 화장품을 주로 파는 한스킨, 미샤 등 중저가 화장품 매장 등이다. 일본인 관광객은 환율 차이로 인한 자동 가격할인율에 면세율, 백화점 자체 할인율까지 더해 거의 절반 가격에 제품을 사고 있는 것이다.

'에스테'는 미용에 관심이 많은 젊은 일본 여성을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두 번째 매력이다. 일본인들은 '에스테틱' 대신 '에스테'란 줄임말을 쓴다. 일본인이 선호하는 '에스테'에는 때를 미는 한국식 목욕, 마사지, 팩을 비롯한 피부미용이 포함된다. 이들은 환율 차이로 일본에서보다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받는다.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면세점의 화장품 매장인 맥(M.A.C.)에서 아이섀도를 고르고 있던 일본인 사이토(24ㆍ여) 씨는 "150만원 정도의 예산으로 2박 3일 여행을 왔다"며 "BB크림, 루이비통 가방, 김이 가장 사고 싶은 물건이고 에스테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동대문 vs. 남대문

한국을 찾는 젊은 일본인 여성들은 동대문시장을 남대문시장보다 선호하고 있었다. 서울 동대문시장에서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직접 디자인한 의류, 잡화 등 패션상품을 싸게 살 수 있다. 패션에 민감한 일본 젊은이들이 반응하는 이유다.

3일 오후 5시께 동대문 의류시장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두산타워 입구에 있던 사키사(22ㆍ여) 씨는 "팩과 파우더, 옷을 샀다"며 "남대문보다 동대문에서 더 많은 물건을 샀다"고 말했다.

3일 오후 8시께 서울 동대문 인근의 T화장품 매장 역시 버스를 대절해서 온 일본인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BB크림이 역시 단연 인기였다. 매장 직원은 "24시간 영업을 하는데 하루 수백 명의 일본인이 방문한다"며 "방문객 중의 절반 이상은 20대"라고 말했다.

두산타워는 개별 방문을 제외한 단체 관광객 집계 결과 지난해 12월 9746명의 일본인이 방문해 전체 외국인 방문자의 26.6%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는 외국인 방문객 국적 중 가장 많은 비율이며 작년 8월(5740명)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4일 오후 서울 남대문시장 역시 곳곳에 일본인 관광객이 눈에 띄었지만 젊은이의 비중은 동대문보다 떨어졌다. 남대문시장 초입의 한 김 가게 주인은 "일본인 관광객이 예전보다 2배 정도는 는 것 같다"면서도 "젊은이들은 구경을 주로 하지 구매와 연결되는 나이대는 대개 중년층"이라고 말했다.

일본인 사이에 '돌김'으로 입소문이 퍼진 N상회 직원 노은정(38ㆍ여) 씨는 "하루에 100명에서 200명 정도의 일본인이 온다"며 "일본도 경기가 안 좋아져서인지 작년 10월에 비해 매상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결론은 '인사동'

젊은이들은 우리가 흔히 일본인 관광객하면 떠올리는 '와타나베(渡邊)부인(시내 특급호텔에 묵으면서 고급 미용실에서 피부관리를 받고, 명품을 많이 사가는 일본인 주부)'보다는 '가쿠야스(格安. 매우 싸다는 뜻)족'에 가깝다.

3일 취재에 응한 일본 젊은이들은 대부분 100만~150만원 정도의 예산으로 2박 3일~4박 5일 정도의 체류일정을 잡고 있었으며 특급호텔보다는 관광지 인근의 비즈니스 호텔에 묵고 있었다.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아사노(27ㆍ여) 씨는 "제일 싼 호텔이 인사동 근처에 있어 숙소로 정하고 나왔다"며 "인사동을 본 후에는 콤비니(편의점) 말고 대형마트에 가서 새우깡, 초코파이 같은 과자를 선물용으로 살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일본인 여행 가이드는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젊은이들의 평균수입은 260만원 정도로 돈을 아껴가며 실속여행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이들은 환율의 등락에 따라 언제든지 발길을 돌릴 수 있는 손님인 것이다. 대응책은 무엇일까. 답은 인사동에 있었다. 인사동은 세대를 불문하고 일본인 관광객 누구나가 즐겨찾는 관광지다. 작고 소박하지만 우리 고유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문화상품이 호소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3일 오후 인사동을 찾은 유카(20ㆍ여) 씨는 "동대문은 도쿄의 하라주쿠나 신주쿠 같았는데 인사동은 교토 같은 느낌을 줘서 좋았다"며 "한국여행의 장점은 도쿄와 교토를 집약적으로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카 씨와 인사동을 찾은 히로카타(26) 씨는 "이런 곳이 안 변했으면 좋겠다"며 "더 한국적인 무언가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난타'와 '점프'

공연 등의 문화상품은 좀 더 싼 값을 찾아 '유목민'처럼 이동하는 이들을 붙잡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대안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난타', '점프', '브레이크 아웃', '드로잉 쇼', '사랑하면 춤을 춰라(사춤)' 등의 공연이 모국어에 상관 없이 이해할 수 있는 음악, 손짓, 몸짓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엄서호 경기대 관광학과 교수는 "일본인 관광객은 저렴한 가격을 찾아오는 '가격민감형'이 대부분"이라며 "엔고가 끝난 후에도 이들의 재방문을 이끌어내려면 일반상품과 문화상품을 연계해 마니아층을 만들어내는 클러스터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이어 "특정 상품을 사면 공연 등의 문화상품 할인티켓을 주는 식의 연계 마케팅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그들에 맞춘 상품을 개발하려 하기보다는 우리에게 원래 있는 홍대 앞 카페, 압구정동 등의 생활문화 공간도 일본인을 상대로 한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행을 가면 누구나 묻는 말은 멀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가까이 있는 문화관광상품 전략을 떠올리게 한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것)은 어디(무엇)인가요?"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