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등 만화가 개인사·작업 과정 애환 재미있게 그려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박기준 지음 / 부천만화정보센터 발행 / 1만 6000원

흔히 야사(野史)는 정사(正史)보다 재미있다고 말한다. 정사는 국가가 편찬한 '정제된' 역사이고, 야사는 개인이 편찬한 주변적이고 구체적인 역사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반응이다.

정사는 타당한 사료를 근거로 한 것이지만 큰 흐름을 짚기에 개인의 이야기를 접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반면 야사는 정사가 다루지 못한 주변부의 이야기나 개인담까지 아우르기 때문에 보다 현장감이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구분은 관(官)이 학계의 엄격한 근거에 따라 주도하느냐 개인이 경험을 기반으로 저술하느냐로 나눈 거친 방식이다. 중국의 '역사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개인이 저술했지만 정사로 통한다.

이런 저술 방식의 장점은 사가(史家) 개인이 처음부터 일정한 방향을 잡고 쓰기 때문에 일관된 체계와 가치관을 담을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오늘날 정사/야사의 기계적인 구분은 무의미해졌고, 대신 유명인의 개인사나 정사가 담지 못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말할 때 우리는 '야사'라는 어휘를 쓰곤 한다.

한국만화의 1세대 작가이자 1960년대 만화의 첫 번째 전성기를 이끈 저자가 담아낸 한국만화 100년은 그래서 현대적 의미의 야사에도 적절하게 부합된다.

사실 한국만화의 정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야사라는 말을 쓴 것은 저자의 겸양처럼 보인다. 혹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유명작가들의 이야기들보다는 지난 역사를 되짚으며 의미있는 작업들을 해왔던 작가들을 새로이 재조명하려는 저자의 욕심의 흔적일 수도 있다.

1958년에 작가로 데뷔해 100년의 만화역사 중 절반 이상을 직접 겪어온 저자의 경험은 그대로 살아있는 정사의 증언이 된다. 한국만화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전인 1940년대부터 저자는 당시 사회상과 만화사를 연결하며 만화인으로서의 성장담을 쓰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그리고 본격적으로 한국만화가 신문과 잡지에 연재되며 꽃을 피우기까지의 과정을 '암흑기', '격동기', '해빙기', '침묵기', '개화기' 등으로 명명해 큰 흐름과 독자가 몰랐던 주변의 작은 흐름을 함께 짚어낸다.

이 과정에서 김성환, 신동우, 신동헌, 길창덕, 고우영, 이두호 등 한국만화를 이끈 만화가들의 개인사와 작업 과정의 애환이 재미있게 그려진다. 그야말로 야사로서의 장점이 십분 발휘되는 부분이다.

이들의 성장 과정부터 데뷔 후의 환경은 곧 이들이 창조해온 캐릭터나 작품세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단초다. 이처럼 만화계 곳곳에서 한국만화 100년을 지탱해온 각 분야의 선구자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애정과 감사로 가득하다.

현장만화가에서 만화가협회 회장 역임까지 만화계의 구석구석을 경험하고 느껴온 저자는 마지막으로 현재의 만화교육 체계를 언급하며 다시 한국만화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비록 이제는 백발의 원로가 됐지만, 희망을 잃지 말자고 만화인을 독려하는 저자의 모습은 100년을 버텨온 한국만화의 정신을 그대로 닮았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