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 본 출판가]

"누구나 아는 말을 아무도 모르게 쓴다."

난해한 전문용어로 가득 찬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지적하는 뼈있는 농담이다. 이들 책에 등장하는 자유, 평등, 민주주의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명사는 필자마다 정의가 다르다.

'아비투스(계급에 따라 구분되는 문화적 취향의 특성)', '알레고리(예술적 은유)' 같은 그들만의 언어는 독자를 더 주눅 들게 만든다.

때문에 전문성을 가지면서도 명쾌한 필체로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지식인의 글은 출판가에서 언제나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이들은 사회를 분석하는 혜안 뿐 아니라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정치 에세이를 소개한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쓴 '현대정치의 겉과 속'은 한국 정치 지형을 10가지 이슈로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한국 정치에는 네 가지 얼굴이 있다"고 말한다.

그 네 얼굴은 냉소와 혐오의 대상으로서 정치,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서 정치, 열망과 숭배의 대상으로서 정치, 인정과 이용의 대상으로서 정치다. 언론학자인 저자는 국내 언론이 정치의 첫 번째 얼굴, 즉 냉소와 혐오의 대상으로서 정치를 이야기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정치의 전모를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생각하는 정치 개혁은 인간의 욕망과 탐욕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는 조선 말기와 해방정국부터 거슬러 올라가 10가지 키워드로 한국 정치의 구조를 분석했다.

유권자들이 지도자에게 갖는 과도한 기대와 젊은 층의 투표 이탈, 한국 정치의 파벌문제, 대중 지성의 활용방안 등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돋보인다. 'CEO리더십'부터 '오바마의 화합론'에 이르기까지 60여 개의 정치 용어 해설을 덧붙였다.

'후불제 민주주의'는 유시민 씨가 쓴 정치 에세이다. 명망 있는 칼럼니스트이자 전직 국회의원인 저자는 18대 총선에서 참패한 후 '지식 소매상'으로 돌아와 이 책을 펴냈다.

직설화법의 저자는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로 현실 정치에 대한 주관을 날 것으로 표출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넣은 일종의 '후불제 헌법'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그는 후불제 헌법이 규정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나중에라도 그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 민주주의'였다며 현 정부가 '문명 역주행'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촛불집회, 미네르바 검거, YTN 사장 임용 문제 등 첨예한 갈등 사례를 열거하며 '헌법의 이상'과 대비되는 '권력의 실제 모습'을 설명한다. 이후 참여정부 세력에 대한 회고와 성찰이 이어진다. '대의 민주주의' '국가' '경쟁'등 키워드를 중심으로 5페이지 내외의 짧은 에세이 60여 편을 묶었다.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는 인제대 최원식 교수가 1993년부터 최근까지 발표한 동아시아 관련 원고를 정리해 간행한 책이다. 저자는 혼란을 겪는 지금 시대를 '제국들의 황혼'으로 정의한다.

한국,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 3국은 대국의 꿈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국주의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즉, 한중일 스스로 제국의 길을 포기하고, 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영구적 평화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저자는 '평화체제 구축'에 걸림돌로 지적되는 각국의 민족주의를 동아시아인이라는 공감대로 해결하자는 묘안을 제시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