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봄 햇살이 따뜻하다. 이미 터져 나오기 시작한 나무의 움들이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와 툭툭툭 잎을 펼쳐낼 터이다. 이제 본격적인 식물구경을 시작할 시간이 도래하고 있으니 마음부터 분주하다.

수많은 나무들 중 올해엔 꼭 꽃구경을 놓치지 말아야지 결심한 나무가 있다. 느릅나무이다. 이미 피었을지도 모르겠다. 절대 화려하지도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으며 그 큰 느릅나무에게 걸맞지 않은 아주 작은 꽃들이 줄기에 붙어 이른 봄에 살짝 피고 지나간다.

웬만한 관심이 아니고서는 보기 어렵다. 봄이 완연하여 무엇인가 파릇한 연두 빛은 둥근모양의 것들이 달려있다면 십중팔구 덜 익은 열매일 것이고, 여린 잎이 펼쳐지기 시작하여 눈여겨 볼 즈음이면 이미 열매는 익어가고 있다. 여전히 봄인데 말이다.

느릅나무는 낙엽이 지는 큰키나무 이다. 큰 나무들은 한 아름이 넘고 아주 크게도 자라는데 삼척 하장면 갈전리엔 400년쯤 자란 것으로 추정하는 되는 천연기념물 272호로 지정된 크고 오래된 나무도 있다.

지난해 가지에 열개 안팎의 꽃들이 모여 달리는데, 잘 보면 수술엔 자주빛의 꽃밥이 암술엔 둘로 갈라진 흰 암술머리가 달려 있으며 넓은 종모양으로 느껴지는 회피로 싸여 있다.

3월, 지금 핀다. 열매는 둥그런데 씨앗이 가운데 있고 가장자리에 둥글게 날개가 달려있다. 다닥다닥. 그리고 가지 끝에서 새 잎이 나온다.

느릅나무 집안의 잎들은 사실 구분하기가 쉬운데 잎 아랫부분이 양쪽으로 대칭을 이루지 않고 다서 일그러져 있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잎맥도 선명하고 촘촘하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 잘 생긴 느릅나무 그 자체 보다는 관심이 딴 데 있다. 바로 약재로써의 가치이다. 줄기와 뿌리의 껍질을 유백피(楡白皮)하여 널리 이용한다.

물론 잎, 꽃, 열매등을 각각 유엽(楡葉), 유화(楡花), 유협인(楡莢仁)이라 하여 쓰는데 이외에 많은 생약명이 있을 정도로 아주 유명한 약재이다. 열매를 발효하여 가공한 것을 무이라고 하여 쓰기도 한다.

그 약효를 보면 항암작용을 비롯하여, 각종 염증과 종기, 대소변을 쉽게 하고, 기생충구제, 위궤양, 중이염, 설사 등등 수없이 많은 증상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문제는 유명한 약재인 덕분에 큰 수난을 당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수피를 쓰게 되니 살아 있는 나무껍질을 벗겨내어 죽게 만들기도 하고, 생나무는 껍질이 잘 안 벗겨지니 나무를 베어 넘어뜨리고 두었다가 껍질만 벗겨내는 일도 수두룩하다.

깊은 숲에 가다 껍질 채 벗겨져 처참하게 죽어있는 나무를 보면 십중팔구 느릅나무이다. "자연산 유백피 팝니다"라고 써놓고 판매하는 사람들 있다면 이는 양심을 먼저 팔아버린, 법을 어기고, 자연을 훼손하고도 부끄러워 할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꼭 필요하면 많이 키워 이용해야 한다.

배고픈 시절엔 이 껍질로 가루를 만들어 쌀과 섞어 줄을 끓이기도 하고, 술이나 간장을 담그기도 했단다. 어린 싹은 나물이 되어 국을 끓이기도 쌀이나 밀가루를 섞어 튀김을 만들어도, 느릅떡을 만들어 먹어도 좋다, 씨앗만 분리하여 볶으면 고소한 양념이 된다.

조금 덜 익은 열매는 접착제의 구실을 하기도 하고 속껍질의 섬유를 잘 엮으면 깔개가 되기도 한다. 이래저래 요긴했던 소중한 우리나무 느릅나무. 제대로 알기도 전에 수난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이 몹시 걱정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