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변덕이 심하다. 봄날씨 아니랄까봐. 추웠다. 더웠다. 맑았다. 흐렸다. 바람이 불었다. 그 중 유난히 봄볕이 따사롭던 어느 날, 약속들 사이에 잠시 시간이 비어 옮겨간 학교의 빈교정을 어슬렁거리며 망중한을 보냈다.

건물이며, 정원이며, 운동장이며 퇴락의 길을 가고 있는 그 빈공간에도 봄이 와 있었다.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렸고 회양목들은 달콤한 꿀냄새를 은근하게 풍기며 제법 많은 꽃들을 열렸으며 그 꽃들을 찾는 벌들의 날개 짓이 그 적막한 공간의 유일한 소리였다.

그리고 한때 잘 손질되었을, 하지만 이제 다시 돌이킬 수 없을 듯한 잔디밭의 한 켠을 점령한 환한 꽃다지 무리를 보았다. 물론 냉이도 함께. 생명은 그렇게 어디든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며, 밀려오는 이 계절의 흐름속에 있다는 것을 왜 잠시 잊고 있었을까.

꽃다지는 봄의 전령이라고 말하는 대표적인 식물이다. 양지바른, 그러나 바쁘지 않고 잠시 스 소용에 대해 한 켠으로 밀려져 있는 땅에선 어디든 꽃다지를 만날 수 있다. 항상 꽃다지와 함께 자라는 냉이와 같이 십자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이다.

꽃다지는 이제 제법 한 뼘 높이로 키를 훌쩍 키워 자라고 있지만 생각해보니 이 풀의 개화는 이미 시작 된지 오래였다. 털이 보송한 두툼한 잎들이 땅에 붙어 켜켜이 둘러가며 올라온 지는 두 세주는 되었을 터이고, 그 속에서 꽃대를 올려 자라기도 전에 개화를 시작한지는 한주 이상 되었을 것이며 게으른 우리는 줄 올라온 꽃대가 눈길을 잡는 이제야 꽃다지를 불러본다.

나물로 유명한 냉이는 꽃보다 이 어린 싹을 더 잘 알면서 말이다. 하지만 꽃다지의 풀스토리를 못 보아 안타까울 뿐이지 늦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봄이 다 가도록 꽃다지는 꽃이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한쪽에서 먼저 꽃피었던 자리에 열매 맺고, 익고를 끝없이 반복할 터이니 말이다.

꽃다지의 냉이와 달리 노란색이다. 하지만 꽃색을 때고 그 작은 꽃들을 비교하면 냉이와 같이 네장의 작은 꽃잎들로 이루어지며(당연하지 십자화과이니까) 둘글게 차례로 꽃을 피워가며 줄기를 키워가며 올라온다. 열매는 세모진 냉이와 달리 타원형이다. 하지만 이 역시 모양 빼고 자라는 행태는 냉이와 거의 비슷하다.

이쯤되면 왜 사사건건 꽃다지 이야기를 하면서 냉이를 들먹이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꽃들을 찾아 들판을 헤메이는 사람들은 다 안다. 두 풀은 대부분 함께 자란다.

게다가 알고 보면 꽃다지도 좋은 나물이 된다. 냉이처럼 아주 특별하고 향긋한 향이 없는 탓에 유명세는 덜하지만 이 봄의 잎들은 살짝 데쳐 나물로 무쳐먹어도 된장 풀어 봄 국 끓여도 달고 맛나다. 너무 순한 맛이어서 유명해지지 않는 걸까? 씨앗은 약으로또 쓰인다는 기록이 있다.

꽃다지란 이름은 참 곱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그 근거는 찾을 수 없으나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론 꽃들이 다닥다닥, 닥지닥지 모여 피어 그리 되었단다.

작은 노랗고 꽃들 때문인지 코딱지나물이란 별명도 있다. "다정도 병인 양"하다더니 풀에 대한 내 증상을 두고 하는 말인 듯 하다. 예쁜 꽃에 웬 지저분한 이름이냐 불평도 있겠으나 난, 그리 들으니 이 풀들이 더 더욱 정다워지니 말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