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춥다가 덥다가를 반복하는 봄철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모자라서 이젠 하루에서 바람이 불었다 그쳤다. 해가 나왔다 숨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음침하다. 차라리 산불걱정이라고 덜게 비라도 죽죽 내렸으면. 날씨 탓인지 갑자기 박쥐나무가 떠올랐다.

어둡고 음침한 박쥐에 대한 느낌 때문이겠으나 사실 이 나무를 알고 나면, 이름이 주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나무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나무가 얼마나 새잎이 연하고 곱고, 또 꽃은 얼마나 특별하고 정갈한지를 직접 보고 나면 그간 이름으로 가졌던 선입견으로 다소 무관심했던 스스로에 반성을 하게 된다. 박쥐나무 미안!

박주나무는 우리나라 숲에서 낙엽지는 작은키나무이다. 흔하진 않아도, 귀하지도 않은 눈썰미만 좋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다만 날 봐 달라고 들어나는 나무가 아니라 큰 나무 그늘에 가려 자른 관목들 사이에 섞여 있는 듯 없는 듯 그리 자라는 나무이다. 습기도 좀 있고, 전석지처럼 물빠짐도 있는 그런 곳을 좋아한다.

이리저리 틈을 보아 여러 개로 갈라져 줄기는 올라오고 잎이 달린다. 잎은 큼직하다. 손바닥 크기쯤 된다. 아이 손에서 어른 손의 크기가 다르듯 이 나무의 잎도 꼭 그 정도의 범주에서 변이가 많다, 잎을 전체적으로 둥글게 이으면 원형에 가깝지만 끝이 3-5갈래로 그리 길지 않게 갈라져 있다. 잎만 보아도 금새 알아볼 만큼 개성 있다.

꽃아 아주 걸작이다. 잎 아래로 아래를 향해 피는데 곤봉모양의 꽃봉오리가 벌어지면 8정의 가느다란 유백색의 꽃잎은 바깥으로 발리듯 피어난다.

장난삼아 잎을 당겼다 말면, 정말 동그르르 뒤로 말려 예쁘고, 그 사이로 길게 드러난 12개의 노란색 수술과 조화롭다. 봄에서 여름에 걸쳐 핀다. 가을에 익는 열매는 원형인데 그 빛깔이 반짝이는 코발트빛이어서 이 또한 매력이 넘친다.

왜 이렇게 멋진 나무에게 박쥐나무란 이름을 붙여주었을까? 설이 구구하다. 큰 나무 밑에서 나무잇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볕을 받아 사는 큼직한 잎이 어두운 곳에 사는 박쥐의 날개를 닮았다고도 하고, 그 사이로 매달리듯 달리는 꽃송이들이 박쥐가 동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같이 그리 되었다고도 한다.

중요한 점은 좋은 일하는 배트맨도 있고 박쥐도 생태계 내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듯이 잎름이나 선입견에 갇혀 진짜 참 모습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박쥐나무 역시 생김새만 멋진 것 뿐 아니라 쓸모도 이리저리 많은데, 우선 어린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미미하겠으나 수피는 섬유자원으로 활용한다.

본격적인 시도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나 잎과 꽃과 열매가 좋고 더욱이 그늘에서도 잘 견디는 드문 나무이니 그늘진 공원, 도시 숲 조성하는 곳에 도입하면 좋을 듯 하다.

ㅍ약으로도 쓴다. 팔각풍(八角楓)이란 생약이름을 가지고 뿌리, 잎, 꽃을 모두 이용하는데 여러 증상에 처방하지만 통증완화, 마비, 근육이완작용이 있는 것이 독특하다.

우거진 숲에서 박주나무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 기쁨이듯, 주변의 부정적인 사람들에게서도 좋은 점을 찾아내는 일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