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지리산 뱀사골에서 성삼재를 지나 천은사에 이르렀을 무렵 산벚 나무엔 눈송이 같은 꽃이 열리고 있었다. 구례에서 하동에 이르는 섬진강변 굽이굽이 활짝 핀 개나리와 벚꽃은 은빛 햇살에 눈부시고, 청색 강물도, 기다림에 들뜬 사람들도 모두 꽃의 절정을 예감한다.

쌍계사 가는 길목 벚꽃 터널은 우리들 생을 낯 선, 낯설지 않은 그리움의 세계로 이끌고, 돌담 너머 슬레이트 지붕 아래 여지 것 펴있는 빨간 동백은 미완의 혁명으로 남은 봄 같다. 짧은 여행길에 오른 우리 일행은 새벽녘 서울에서 비를 만나고, 고속도로에서는 펑펑 쏟아지던 함박눈을 보더니, 화개에 이르러 점선처럼 사라져가는 매화를 볼 수 있었다.

생의 이면 같은 봄날이다. 나는 섬진강을 바라 볼 때마다, 나룻배에 올라 줄을 당겨 강을 건너던 기억과 그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 할 수 있게 해 준 시쟁이 곽재구와 그 사내의 산문집,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을 떠올린다. 남녘을 좋아하고, 섬진강 길을 이뻐하고, 압록, 곡성, 연화리, 보성강, 평사리에 이르는 한국의 로만틱가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치고,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의 감흥을 이빠이 안 받아 본 사람들이 있을까.

독일 유학 시절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밤의 카페테라스’에 관한 리포트를 쓰다가 곽재구의 산문집을 새롭게 읽었다. 나는 곽재구 시의 이미지가 회화보다 더 회화적이고, 이미지가 이미지의 집을 짓는 회화의 형상 공간(Bild raum)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와 산문은 아름다움을 저장하는 저장고 같다.

오늘같이 남녘의 꽃에 취한 날은 반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에서 등 푸른 별을 보며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싶다. 소주잔에 분홍빛 홍매화 따 넣고, 별이 지기를 기다리면 내 마음에도 별이 살 수 있는 단칸방이 생기리라.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을 읽다보면,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 그림 속 이미지가 그려진다; 사람들 몇은 귀가를 서두르며 어두운 골목길로 사라져가고, 사람들 몇몇은 테라스에 앉아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술을 마신다.

카페를 밝히는 노란 등(燈)은 가슴에 상처 하나 둘 매단 사람들을 은은하게 보듬고 불빛은 도시의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 같다. 섬처럼 떠도는 사람들, 피곤이 황사처럼 내려앉은 얼굴들, 텅 빈 거리에 길 잃은 사람들은 마음 속 등대를 찾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도 사람들 가슴에 물든 그리움을 찍어 별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별이 따뜻한 것은 심장을 고동치게 한 고독과 아직은 지울 수 없는 사랑이 밤마다 빛나기 때문이고, 별이 아름다운 것은 사람들 마음에 별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꽃이 소리 없이 지상을 덮을 때도 별은 우리들 몸에 들어와 반짝이며 집을 짓는다.

그리고 고흐 그림의 정점인, 숭고한 청록 빛 별과 사람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대비를 이루는 아름다움... 나는 곽재구의 시편들과 산문집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을 읽을 때마다 시인이 꿈꾸는 세계의 이미지가 , 반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에 나타난 회화의 이미지와 포개지는 것을 느낀다.

하긴 독일의 미술사학자 레싱은 미술은 시이고, 시는 미술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남녘으로 봄 여정에 나서는 사람들, 도회지에서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이여, 이 책을 읽으면 봄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당신의 소원을 들어줄지니!



민병일/ 시인, 열림원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