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여기 사람이 있다

“이런 슬픔, 이런 불공평, 이런 분배의 어리석음, 이런 정치·경제 정책을 하면서는 미래가 깜깜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는 건 우리가 벼랑 끝을 향해서 가는 거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난쏘공’은 벼랑 끝에 세운 ‘주의’ 팻말이라고 나는 생각을 했어요. ‘이 선을 넘으면 위험하다’고.”

지난 1월 20일 용산참사 현장을 다녀온 후 남긴 조세희 작가의 말이다. 용산 재개발 철거에 생계 대책을 요구하며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불에 타 죽은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는 다시 술렁였다. 그러나 용산참사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희생자는 있되, 가해자는 없는 ‘현대판 의문사’가 됐다. 참사의 현장에서 어느 문인은 말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재개발 한다는 말인가”라고.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이 훌쩍 지난 지금, 이들의 삶을 기록한 책이 나왔다. 출판사 ‘삶이 보이는 창’에서 펴낸 ‘여기 사람이 있다’가 그것. 르포작가 15인이 쓴 이 책은 용산 참사 희생자 가족과 수도권의 재개발 지역 세입자의 이야기를 엮었다.

이번 용산 참사에서 죽음을 맞은 윤용현, 이성수, 양회성 씨의 가족을 비롯해 고양시 풍동, 광명시 광명 6동, 서울 흑석동과 성남시 단대동 등 재개발로 인해 삶의 근거를 상실한 철거민들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책의 주인공은 350만원 무허가 판잣집을 ‘내 궁전’이라 여기고 12평짜리 전셋집에서 네 식구가 사는 소박한 사람들이다. 재개발로 인해 삶의 둥지를 빼앗긴 사람들은 자신의 꿈이 담긴 작은 가겟집과 가정을 지키고 싶었노라고 말한다.

“철거민이 되고자 해서 되는 사람은 없어요.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이거든요.”(고양시 풍동 지역 철거민 성낙경 씨)

인터뷰에서 철거민들은 말한다. 그들이 시위를 하는 이유는 개발에 따른 막대한 이익을 분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개발과정에서 주거민들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용산 참사를 계기로 철거민들의 삶을 담은 구술 기록인 셈이다.

수도권 철거민과 용산참사 유가족의 구술과 함께, 참사 현장을 다녀온 조세희 작가의 인터뷰도 함께 엮었다. 조세희 선생은 “한국이 부족한 건 집이 아니라 지혜”라고 말하며 “인간의 생명, 인간의 고통을 다룰 때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번 기회를 삼아서 새 출발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오롯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 이 책은 잊혀지기 전 역사에 관한 기록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게 되게 큰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아예 모르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묻히는 게 무서워요. 처음에는 그렇게 난리였던 언론도 조용해요. 뉴스 틀어도 나오지 않아요. 한편으로 걱정돼요. 잊힐까봐. 그게, 제일 무서워요.”(용산 참사 故 이성수 씨의 차남 상현 씨)

송경동 시인
"철거민의 고통과 삶 차분하게 경청하는 자리"



송경동 시인은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중견 시인이다.

용산참사 이후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그는 이 책을 기획하고 르포작가 섭외와 편집을 담당했다. 책의 기획의도와 앞으로 활동 방향에 대한 계획을 들어보았다.

- 책의 기획의도와 과정에 대해 말해 달라

용산 참사의 희생자는 평범한 분들이다. 경찰서 구경 한번 안 해보신 분들이 절박한 상황에서 호소차원으로 건물 위에 올라갔다고 보는데, 무리한 공권력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까지 갔다. 정부가 사과하고 언론이 문제를 지적해야 했지만, 제대로 사후 대책이 이뤄지지 못했다.

참사 후 용산 철거민들을 '도심 테러집단', '건설 브로커'로 보는 왜곡된 시각도 있다. 철거민들의 고통과 삶을 차분하게 경청하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르포 작가 15인이 함께 썼다. 참여인원이 많아서 각 장마다 글 스타일이 다르다. 기획과 편집 과정에서 르포 작가들에게 어떤 요구를 했나?

이 책은 시의성이 중요했다. 용산참사 갈등이 다 끝난 다음에 정리하는 책이 아니라, 갈등 과정에 출간되어서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이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갈등 상황에서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빨리 듣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여 작가들에게 요구한 첫 번째 사항이었다.

두 번째로 작가들의 생각보다 용산 참사 유족을 비롯한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집중했다. 작가가 취재과정에서 얻었던 느낌이나 이야기를 함께 엮긴 했지만, 철거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옮기는 데 중점을 두어 작업했다.

처음부터 참여 작가들과 합의해서 작업했기 때문에, 편집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다.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충분하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도 든다. 하지만 지금 첨예하게 문제가 대립하고 있을 때 이 책이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본인을 포함해서 이 책에 참여한 작가들이 책을 엮어가면서 용산 사태를 보는 시야가 바뀐 점이 있나?

사실 철거민들의 삶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책을 엮기 전 언론 보도를 통해 파편적인 정보만 들었다. 철거민 문제는 일부 소수의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지역만 하더라도 200여 군데 재건축, 뉴타운 문제가 걸려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문제이고, 과거 1970~80년대와 달리 누구든지 철거민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책을 만들며 이 부분을 뼈저리게 느꼈다.

또 하나는 '건설자본을 중심으로 한 현재 개발정책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 재개발문제, 뉴타운문제가 어떻게 진행돼야 하나?'와 같은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고민이 깊어진 점이다.

- 이 책과 관련해 앞으로 계획 있나?

용산 참사와 관련해 문화예술인들이 아직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용산 참사 현장에서 연극인들이 '끝나지 않는 연극제'를 한다. 문학인들도 매주 금요일마다 그곳에서 무료 책 사인회를 하고 있다.

미술인들은 서울 평화박물관과 부산 전시장에서 '망루전'을 진행하고 있다. 4월 25일에는 시민들이 함께하는 대규모 음악회도 준비하고 있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용산참사의 본질을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좀 더 많은 독자들에게 예술인들의 활동이 알려지길 바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