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신영복 교수의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어렸을 적 몸이 약해 아이들과 나가놀지 못하면서 생긴 책읽기 습관은 결국 살면서 가장 질긴 취미가 되었다.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읽은 것처럼 회자되는 책들을 읽어가면서 느낀 것은 주변 사람들이 그 책들을 안 읽었다는 것이었고 그 덕분에 약간의 독서로도 쉽게 잘난 척(?)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어렸을 적 또래의 여자를 감동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편지쓰기인데 감동적인 편지를 쓰기 위한 필수 요소 역시 책읽기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책을 가까이 하게 되는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삶에 치이게 되면서 자신의 삶 자체가 드라마라고 느끼는 순간, 무거운 글 읽기는 더 이상 즐거운 취미가 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이가 되도록 책읽기를 취미로 붙들고 있는 것을 보면 힘든 내 삶을 붙들고 살면서도 남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관음증적 증세가 다른 사람들보다 강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책을 읽기에 어려운 책은 한 달 넘어 읽을 때도 있고 마음에 드는 책은 서너번 씩 읽기도 한다. 정말 좋은 책을 읽을 때는 마치 좋은 와인을 마련해놓은 기분이다. 최근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신영복 교수의 ‘강의 - 나의 고전독법’이다.

건축이 공학보다 오히려 종교와 인문학에 그 뿌리를 갖고 있고 현대건축은 서양건축을 근간으로 하기에 서양철학과 기독교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들과 다른 위치에서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해온 동양철학과 불교, 유교, 도교에 대한 공부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한국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자어를 우리말로 해석하고 거기에 자신의 깊은 이해를 더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을 해주는 작가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었다. 몇 년 전 도가사상에 대한 해설로 매스컴을 탄 작가가, 도가사상이 가르치는 것과는 전혀 반대로 헤어스타일, 옷, 말투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려는 치기로 가득 찬 모습을 보면서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신영복 교수의 ‘강의’는 중국의 역사와 사상을 꿰뚫어보는 혜안과 그 의미를 현대의 우리 역사에 재조명해서 우리의 삶의 의미와 방향을 반성케 하는, 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작가를 바라보면서 지식을 통한 깨달음의 가능성 그리고 깨달은 대로 산다는 것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신영복 교수와의 만남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을 감옥에서 지내면서 정치적 이유로 자신을 정죄한 정부와 사람들에 대한 증오를 키우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키우고, 지적인 탐구의 깊이를 더했으며 삶에 대한 깨달음의 깊이가 매우 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생각들은 ‘강의’를 읽으면서 확인되었다.

‘강의’는 쉽게 읽혀지는 글은 아니지만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음식을 씹듯 한 장 한 장 읽어가면 한 개인의 지식, 인간이 써온 역사 그리고 삶에 대한 이해의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은 시경, 논어, 주역, 노자, 맹자, 장자, 묵자, 법가 사상까지 중국의 고전을 총 망라하고 있다.

주의 깊게 봐야할 부분은 서양철학과의 차이점에 대한 작가의 강조이다. 서양철학은 존재론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동양철학은 관계론에 그 뿌리를 둔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론 맹자와 묵자에 대한 작가의 이해의 깊이가 감동스러웠다. 인문학 그리고 철학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에게 ‘강추’ 하고 싶은 책이다. 물론 책을 들기 전에 신영복 교수에 대한 선행학습이 있다면 감동의 깊이가 배가될 수 있다.



이필훈 / 정림건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