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내]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이혜경 외 지음/ 강 펴냄/ 1만 원도시의 어두운 면 드러내며 도시인의 비애 그려

모든 예술 작품은 창조자의 생애에서 비롯된다. 작가의 배움과 길들여짐, 태어남과 경험의 산물이 예술 작품이란 사실을 문학에 투영해 보자. 작가가 머문 공간과 이 공간에서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문학적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대다수 지식인과 문인이 서울과 서울의 위성도시에서 살고 있는 현실에서, 서울이란 공간은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특별한 지위를 누린다. 1930년대 신지식인, 박태원이 그러했고(소설 ‘천변풍경’), 천재 소설가 김승옥이 그러했다(소설 ‘서울, 1964년 겨울’).

최근 출간된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는 그 연장선에 있다. 이 책의 문학적 자양분은 제목처럼 서울 그 자체다. 이혜경, 하성란, 권여선, 김숨, 강영숙, 이신조, 윤성희, 편혜영, 김애란 등 9명의 여성 작가가 쓴 단편 소설은 모두 서울이라는 ‘문학적 공간’에서 소재를 빌려왔다.

이혜경의 ‘북촌’은 북촌 한옥마을에 세 들어 사는 독신 남자와 그의 집에 피신해 온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이다. 의붓아버지의 수상한 눈빛이 싫어 도망치듯 서울로 온 여자는 여전히 자신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만 대하는 서울의 남자들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하성란의 ‘1968년의 만우절’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딸이 빈손으로 서울에 와 살기 위해 평생 거짓말을 해야 했던 아버지의 삶을 돌이켜 보는 내용이다. 권여선은 ‘빈 찻잔 놓기’에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감정을 이용하는 욕망의 각축장으로 서울을 그렸다. 편혜영은 ‘크림색 소파의 방’을 통해 타인의 진입을 거부하는 완강한 도시, 서울을 그려냈고, 윤성희는 ‘소년은 담 위를 거닐고’에서 서울의 속물성을 드러낸다.

단편집은 이외에도 서울 재개발지역을 배경으로 거대 도시 서울에서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는 소시민의 삶을 그린 김애란의 ‘벌레들’, 망원역 근처 다세대 주택에서 마주치는 이상한 이웃을 통해 도시인의 고독을 그린 김숨의 ‘내 비밀스러운 이웃들’ 등을 실었다.

소설이 나온 지난 금요일, 아홉 명의 작가가 인사동 찻집에 모였다.

“여기(소설) 나온 사람들, 전부 우울하지 않아요?”

누군가 말을 꺼내자 너나없이 서울을 말하기 시작했다.

“맞아, 이거 읽고 나면 누가 서울 살고 싶을까?”

“편혜영 작품 읽어봐 섬뜩하잖아.”

“근데, 굳이 서울이 아니라, 도시라는 말을 넣어도 될 것 같아.”

9명의 시선으로 쓰인 이 작품집은 서울의 어두운 파편을 드러내며 고독한 도시인의 비애를 그리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