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첫 소설집 '늑대의 문장'재앙 모티프 9개의 작품 단절·탄생·소멸 반복하며 하나의 세계 만들어

‘마녀가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노래는 시작된다.’

작가 김유진의 첫 소설집 ‘늑대의 문장’앞에 붙은 수식어는 섬뜩하다. 2004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한 그는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묘사로 문단에 주목을 받았다.

작가 스스로 “인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말한 초기 작품은 소설의 중심축인 캐릭터와 서사를 배제하고 있다. 그러니까, 표제작 ‘늑대의 문장’을 포함한 초기 작품들은 이미지 묘사만으로 소설이 힘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작인 셈이다.

‘죽음에 임박한 개들은 목구멍으로 칼이 쑤시고 나온 듯 비명을 토했다. 핏물이 번진 눈을 하고, 어둠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단편 ‘늑대의 문장’중에서)

표제작 ‘늑대의 문장’은 여자 세 쌍둥이가 갑자기 폭사한 지점에서 시작한다. 발병의 원인을 모른 채 폭사는 점염병처럼 마을에 퍼진다. 혼돈에 빠진 마을 사람들은 키우던 개를 버리고, 개들은 몰려다니며 가축과 폭사당한 시체를 먹어치운다. 낮에는 사람들이 늑대의 자식을 죽여 나가고, 밤에는 늑대가 사람을 공격한다.

단편 ‘빛의 이주민들’을 비롯해 ‘마녀’ ‘목소리’ 등 대부분 작품의 모티프는 재앙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폭사를 당하거나, 테러에 대비해야 하거나, 기형적 신체구조를 갖게 된다.

“이 작품들을 쓸 당시, 제가 재앙과 혼돈의 순간에 찾아오는 정적, 고요함에 매료됐던 것 같아요. 사라지기 직전 상황에서 의연함을 유지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작품에서 꼭 하나는 그런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거든요.”

툭툭 던지는 강렬한 문장은 몽환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런 특징에 대해 김형중 문학평론가는 “김유진의 소설은 매우 낯설고 불쾌하다. 소설 곳곳에 덜 퇴화한 사랑니나 꼬리뼈처럼 귀찮고 성가시게, 아주 고통스럽게 고대적 존재들의 흔적이 출몰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야기의 뿌리만 남기도 다 제거하는 과정에서 이미지만 남게 됐다”고 설명했다. 9개의 작품은 단절과 탄생, 소멸의 과정을 반복하며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단편‘움’ 이후에 작품이 좀 바뀌었어요. 이전처럼 툭툭 던지듯 쓰는 게 아니라 문장과 문장을 유기적으로 쓰는 거죠. 더 큰 그림을 그릴 방법을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움’은 기형적인 몸을 갖게 된 소년의 이야기다. 거대하고 단단한 팔과 볼품없는 신체를 갖게 된 주인공 움은 당대 예술가들과 호사가들의 관심거리가 된다. ‘어제’는 귀신이란 이름의 배 이야기다. 어느 날 종적을 바꾼 귀신은 일 년 뒤 세탁선으로 개조된 채 다시 세상에 나타난다. 마지막 작품인 ‘고요’는 가장 서사가 뚜렷한 작품이다.

주인공 나는 할머니의 실종 소식을 듣고 할머니 집으로 가지만, 그 마을에서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된다. 사라진 할머니는 대청 밑에 시체로 누워있다. 발표순으로 엮인 단편집은 작가의 관심사와 문학적 시도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오래 쓰고 싶어요. 단편을 쓸 때는 이미지만으로 끌고 가는 게 충분히 가능한데, 장편은 서사성이나 캐릭터의 감정 등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뒤로 갈수록 서사성이 있는 작품을 쓰려고 했어요. 지금은 긴 글을 쓰는 데 필요한 훈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