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뒤집어 보기' 저자 박상용화랑에 쏠려 있는 힘 분산시켜 생산·유통·소비 균형있는 시장 만들어야
입장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그림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막상 화랑 입구에서는 쭈뼛쭈뼛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어떻게 “1차 관문”을 통과한 박상용은 “그림 살 놈인가 그냥 구경온 놈인가 훑어보는 훑어 보는 시선”에 맞서 용감하게 물었다.
“이 그림 좋은 건가 봐요?”
“그럼요. 유망한 작가 작품이지요. 투자하면 손해보지 않을 겁니다.”
뻔한 상술인데도 대꾸할 여지가 없다. 왜? 거론되는 대상이 ‘미술’이기 때문이다. 질문의 수준이 곧 그 사람의 교양과 감수성의 척도가 되어버리는, 욕망의 우아하고 모호한 대상. 더 묻자니 촌스러워진다. 정작 궁금한 “얼마예요?” 라던가 “왜 이렇게 비싸죠?” 같은 세속적인 질문은 더더욱 체면 깎는 것이다.
비단 화랑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미술시장 전체에 고착된 불공정한 관계의 구도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미술시장이 양적으로 팽창하며 대중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초심자에게는 여전히 장벽이 높다. 정보가 불투명하고 유통 업자인 화랑의 힘이 생산자인 작가와 소비자인 컬렉터의 그것보다 지나치게 세기 때문이다. 2007년 그림 한 점을 사면서 컬렉터가 된 박상용은 이 “고가의 고급 시장에 시장의 기본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에 놀랐다.
가격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통해 사느냐에 따라 들쭉날쭉했고, ‘소비자를 위한 투자 가이드’는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는 시장의 유혹에 다름 아니었다. 교수, 평론가, 언론사 미술담당 기자도 파는 쪽과 “한통속”이라고 느껴졌다. 결국 화랑의 이익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시장이었다.
그래서 책을 썼다. 더 이상 ‘봉’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미술시장을 더욱 애용할 단골 고객”으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도발적인 문제제기가 가득하다. ‘화랑이 죽어야 미술이 산다’, ‘그림은 ‘작품’이 아니라 ‘상품’이다’, ‘전문가의 의견은 무시하라’, ‘아트페어는 시장의 걸림돌’ 등등. 비판을 위한 비판만은 아니다. 오히려 미술시장을 건강하게 만들려는 애정어린 충고에 가깝다. 타당하게 쓰기 위해 미술시장 구성원과 관련 사례들을 꼼꼼히 취재했다. 책의 원제는 ‘미술시장 알고도 말 못하는 이야기’였다.
“화랑의 역할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산-유통-소비 영역이 균형을 이루는 시장 구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현재 대형 화랑에 쏠려 있는 힘을 분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미술시장 상황은 예를 들면 대형마트가 생산자를 좌지우지하고 소비자를 현혹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초점은 미술 시장에 들어오는 소비자에게 지침을 주려는 것이었는데 유의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하다 보니 그게 다 화랑의 힘이 너무 센 데에서 나타나는 문제로 모아졌다.”
대형 화랑의 ‘도의적 책임’도 지적했다. ‘미술은 값어치로 따질 수 없다’는 명제를 오히려 미술품 가격을 높이는 데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기대하는 것은 값어치로 따질 수 없는 미술을 다루는 만큼 스스로 ‘준예술가’라는 사명을 갖고 정말 ‘좋은 미술’을 본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작가와의 관계 개선이 우선이다.
“대형 화랑의 전속 작가 제도도 상업적인 전략에 따라 근시안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단기간에 ‘키워낸’ 작가들의 경우 뒷심이 부족해서 10~20년 지나면 사라지기도 한다. 이런 시장에서는 화랑을 믿은 컬렉터들도 손해를 보고, 작가들 역시 재능을 인정 받지 못한다.”
저자는 철저하게 소비자 편이다. 그 자신이 홀가분하고 뿌듯하게 미술품을 살 수 있는 시장을 바라기 때문이다. 결국 미술을 대중화함으로써 미술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화랑 쪽에서는 미술품 가격이 300만 원 정도면 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비자에게는 결코 싼 가격이 아니다. 그런 인식차가 줄어들었으면 한다. 고가 시장은 고가 시장대로 존재하되 중저가 시장도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컬렉터 저변도 넓어지고 갓 미술대학을 졸업한 작가들도 스스로 클 수 있는 발판이 생기지 않겠나.”
미술시장전문 출판사인 ‘오픈아트’의 대표인 저자는 올해 1월 ‘2009미술작품가격’을 펴냈다. 작년 한해 국내 미술시장에서 거래된 작품 가격을 정리해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었다. 이달 말에는 ‘100만 원으로 하는 미술품 투자’를 펴낼 예정이다.
그림은 '작품'이 아니라 '상품'이다 |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