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뒷마당] 21세기를 여는 젊은 작가들, 2년간 11곳 찾아가 신개념 문학행사

문학이 영광스럽던 시절이 있었다. 그 영광은 가난했던 시절, 대중들의 유일한 소일거리가 독서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90년대 들어, 인터넷의 출연과 전성, 미디어의 다변화, 각종 대중문화의 발전, 대중의 경제적인 여유, 주요 독자인 청소년의 대입시 매진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독자는 나날이 감소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독자 잃은 문학도 그들만의 리그로 위축되어 갔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 데뷔한 작가들은 자기들이 발 딛고 있는 참담한 문학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대중과 만나고 소통하기 위해 여러 길을 모색했다. 그 중에서도 ‘21세기를 여는 젊은 작가들’이 2년 동안 전개한 ‘항구의 밤’과 ‘항구에서 함께하는 문학의 발견’은 특별히 기록될 만하다.

시인 김경주, 김경철, 김근, 류외향, 안현미, 서영식, 윤석정, 이영주, 최명진. 소설가 김서령, 옥노욱, 서성란, 손홍규, 이재웅. 평론가 고명철, 홍기돈 등이 주요구성원인데, 그 시절엔 다들 미약했지만, 몇 년 새에 저마다의 개성으로 각별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알짜배기들이다.

그들은 ‘삶과 문학이 유리되지 않는 창작에 뜻을 함께 했고, 소외된 지역과 치열한 삶의 현장을 발로 찾아다니며 열심히 보고 배우고 그것을 창작에 반영’하고자 했다. 그들에게 항구는 ‘문학적으로 소외된 지역이지만 가장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그들이 두해 동안 복권기금사업의 지원을 받아 찾아간 항구는 11곳이다. 이하는 찾아간 항구, 참가 시인의 구절에서 따온 멋들어진 플래카드 문구, 날짜다.

제주 모슬포, <모슬포에 부는 바람은 날마다 날을 세운다>, 2005. 4. 4

전남 진도 수품항, <이 가심에 먼 소리가 마를 것이여>, 2005. 5. 28

강원 속초항, <바다 사이로 칭얼거리던 꽃잎>, 2005. 7. 2

충남 대천항, <그토록 뜨겁게 흔들리게 했던 자리를 찾아보아라>, 2005. 8. 6

강원 주문진항,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2005. 8. 26

충남 서산 대산항, <저 어여쁜 존재를 어쩔끄나 어찌할거나>, 2005. 11. 24

전남 고창항, <그렇게 고래는 물결이 되었단다>, 2005. 11. 26

전북 군산항, <사랑이 외로운 것은 귀가 있기 때문이다>, 2006. 5. 20

강원 동해 묵호항, <사막을 건너온 바람의 냄새가 났다>. 2006. 7. 15

경기 강화 교동도, <내 가슴 막장을 열어젖히고 나온 그대 입술>, 2006. 8. 26

전남 함평 주포항, <눈물 젖은 구름을 먹어보지 않은 자 어서 오라>, 2006. 9. 30

경북 포항, <나는 멸종하지 않는 종이다>, 2006. 11. 4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녔고, 한 달에 한 번꼴로 출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 살며 각종 잡일로 바쁜 젊은 작가들이 ‘거마비’도 ‘출연료’도 없는 시골구석 행사에, 거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경이롭다. 보는 독자도 즐겁고 참가하는 작가 자신도 즐겁지 않은 행사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테다. 그래서 그들의 문학행사는 기존의 행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모토가 “문학과 놀자!”였다. 자기들이 주도해서는 재미있는 꼴이 나올 수 없다고 겸허하게 인정한 작가들은, 행사 연출자로 단편영화감독 문봉섭을 영입했다. 문봉섭의 연출은 기존의 시낭송과 문학이야기라는 천편일률적인 형식에 마임, 극, 노래, 미술, 영화, 음악 등을 다양하게 접목했다.

거의 모든 예술분야의 참신한 젊은이(마임극단, 국악그룹, 랩퍼 등등)들을 싸게 부려먹었다. 뿐만 아니라 작가들은 뒤풀이 자리에서 싱싱한 젊은이들에게서 넘치는 기를 수혈받기까지 했다. 새로이 연출을 맡은 시인 윤석정은 예산이 더욱 줄어 대학생들을 부르기 어렵게 되자 연극판에서 배운 실력으로 작가들이 직접 연기를 하도록 만들었다.

막판엔 ‘내가 시인인지 종합예술인인지 모르겠어요!’라고 징징대는 작가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때 종합예술인 본능이 확실히 깨어난 김근 김경주 이재웅 안현미 등은, 문학도 인정받고 있지만, 참신한 문학행사의 기획 진행 연출 사회 일로도 분주해졌다.)

모든 행사는 관객의 많고 적음에 성공이 달려 있다. 서울에서 살며 활동하는 작가들이 지방에서도 소외된 항구를 찾아가는 것이니, 관객의 동원은 지역에 사는 선배 작가의 노력에 달려 있었다. 선배들의 노력으로 행사는 학교에서, 마을회관이나 공터에서, 시청 대회의실에서 학교축제처럼 마을잔치처럼 이루어졌다.

하지만 선배의 태평한 마음 덕에 겨우 다섯 명의 관객을 놓고 그 파격적인 공연을 한 적도 있었다. 아예 관객이 없었던 적도 있었다. 동해 묵호항은 사실, 가지 못했다. 그해에 강원도를 크게 망쳐놓은 대폭우가 있었다. 하필이면 행사날이 폭우가 강원도의 고속도로마저 끊어놓던 날이었다.

폭우 속에서 작가들은 계속 가야만 한다고 우기고, 기다리고 있던 묵호항의 선배들은 죽으려고 환장했느냐 돌아가라고 소리를 쳤다. 결국 돌아오다가 어느 민박집에서 자기들끼리 공연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하나 넘치는 것이 있었으니 술이다. 하이트 맥주의 협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가들에게 2년간의 항구 여정은 재미있었을 뿐만 훌륭한 경험이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최근 그들이 펼치고 있는 튼실한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가라는 족속을 처음으로 겪은 항구 사람들에게도 어쨌든 신기한 경험이었을 테다.

작가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문학을 느낀 항구의 청소년이 적어도 한둘은 될 테다. 확실한 것은 ‘항구의 밤’이 새 시대에 부합하는 문학행사 모델인 ‘문학을 주요 테마로 하는 종합예술적인 공연’ 양태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김종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