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도쿄 3S'

얼마 전, TV를 통해 일본의 음식 장인들이 일을 마치고 따로 조그마한 모임을 갖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이미 요리 실력만으로도 일가를 이루는 주인공들이었지만 자신이 새로이 고민하고 있는 요리들을 선보인 뒤 다른 장인들의 혀로 냉정한 심판을 받는 모임이었다. 실로 대단해 보였다.

그들은 일개 음식에도 감정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접시에 담아 내놓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사람의 감정을 일으키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는 마법사로 생각하는 듯 보였다.

최근 눈길을 끄는 맛있는 책 한 권이 있다. 동경의 스시sushi, 소바soba, 사케sake. 이른바 3대 ‘S’로 분류할 수 있는 일본의 식문화에 관한 문화서이다. 물론 이 책은 ‘주말 식도락 가이드북’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소박하면서도 절대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식문화를 맛깔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더군다나 일본 음식 전문가도 아닌 일본 동경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한 한국인 ‘아줌마’가 발품을 팔아 썼다는 사실이 신뢰를 부른다.

무려 수십 대에 걸쳐 한 직업을 이어가는 일은 기적을 넘어 성스러운 일에 가깝다. 일본에서는 5대, 6대, 7대 정도 뒤를 잇는 것은 그야말로 흔하디 흔한 현상에 속한다. 그렇게 스시장인, 소바장인, 사케장인들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음식 맛을 보지 않아도 향으로만 배가 부르고 취하는 것 같다.

30년도 더 되어 가족보다도 더 가족 같은 식당 직원들 이야기에선 뜨겁게 마음이 달궈진다. 십년 전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소바집에 들러 소바를 먹고 어른이 되어 다시 소바집을 찾은 한 청년의 이야기, 벚꽃놀이 시즌 만큼은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는 사람들 이야기, 사케 소믈리에가 들려주는 사케를 고르는 방법과 마시는 방법, 스시 평론가가 들려주는 스시 골라먹는 방법…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우리가 접했던 일본 음식에 대한 개념이 선명해지고 또 일본 음식이 얼마나 ‘일본적인’ 의미 이상인가를 고게 끄덕이며 이해하게 된다.

인간의 혀의 감각은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그 혀가 바라는 맛의 차원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이 맛있는 책을 읽으면서 애 책에 소개된 스시집과 소바집에 들러 사케를 한잔 하러 동경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도 했지만 음식에 있어서만큼은 가장 이상적인 답변을 내려주는 것이 일본의 음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그치기로 한다. 더불어 건강을 최고 우위에 두는 이 시대에는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의 얼굴을 돌아보게 한다. 세상 사람들의 입맛은 이제 먹는 것을 먹는 시대가 아니라 특별한 것을 먹고 싶어 하는 시대가 왔고 그 가운데 일본음식과 중국음식, 그리고 이탈리아 음식이 그들의 선택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태국이나 인도, 그리고 베트남 음식도 그들 세력에 동참한 지 오래 되었다(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나라 음식들에 열광하는 것은 그 나라를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 어느 정도 그 나라에 취해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요리하는 이들의 역사 혹은 자부심이 뒤따르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음식문화는 이제 마음을 열고 그들에게 다르게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물론 마음을 여는 일만이 전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우리 음식의 반짝임과 황홀함을 생각하면 아까워도 너무 아까운 것이다.



이병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