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日학자 진보주의자로 전향·한국 문단 '마르크스의 귀환' 이슈로 떠올라

고이즈미 정권 개혁의 일등 공신, 나카타니 이와오의 전향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것은 지난 2월이었다. 유학중인 후배는 이와오의 전향과 일본 내 파장을 소개하며 열변을 토했다.

“이게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도 센세이션이라니까요. 좌파도 ‘리버럴 보수’가 되려는 마당에 신자유주의론자가 진보주의자로 전향했다는 게 흥미롭지 않아요?”

나카타니 이와오의 전향은 일본 내 이슈가 됐고, 그 결정체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는 곧 일본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난 해 12월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딱딱한 경제서적이란 한계를 딛고 13만부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이처럼 세계적인 공황은 미국을 건너 일본과 한국 지식인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자유주의 예찬론자가 진보주의자로 전향하는가 하면, 우석훈, 장하준 등 신자유주의 체제를 고민하는 경제학자의 책이 국내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나아가 문학계에서도 신자유주의에 관한 고민을 이슈로 삼기 시작했다. 문예지 ‘문학과 사회’ 여름호는 ‘마르크스의 귀환?’을 특집으로 실었다. 흥미롭지 않은가?

어느 전향자의 고백

나카타니 이와오는 누구인가?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74년 귀국 후 규제완화 추진파 학자로 주목받았다. 1990년대 호소카와 내각과 오부치 내각의 수상자문기관의 일원이었고 그 후 오부치 내각의 경제 전략회의 의장 대리를 맡았다.

그의 개혁 방안은 고이즈미 정권의 중심인물이던 다케나카에게 인계돼 정부 정책으로 추진됐다. 대표적인 정책이 우정국 민영화다. 그는 글로벌자본주의를 일본에 들여온 주역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난해 돌연 ‘변절’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비롯된 세계금융위기를 지켜 본 후 말이다.

“나를 포함해 너무 미국에 심취된 유학파들의 착각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면서. 책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는 그가 전향하게 된 과정과 글로벌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작금의 신자유주의 한계를 지적한 경제분석서다. 한국어 번역판은 지난 주 국내 출간됐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금융공황이란 대변동에 직면하면서도 많은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 경제의 자율적인 조정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신자유주의나 글로벌자본주의 구조가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한때’ ‘그런’ 경제학자 중 하나였던 저자는 생각을 바꿔 “글로벌자본주의는 경제의 불안정화, 빈부격차의 확대, 자연환경파괴 등 본질적 결함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글로벌자본주의는 엘리트가 대중을 착취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되고 있다”(73쪽)고 지적한다.

<실제로 글로벌자본주의가 성립되었어도 ‘보이지 않는 손’는 움직이지 않았고 그곳에 생긴 것은 한줌의 ‘슈퍼리치’와 압도적 다수의 ‘근로빈곤층’이 있는 양극화 구조였다.>(98쪽)

글로벌자본주의의 핵심적인 문제는 물자나 돈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넘나드는데, 그것을 제어하는 주체는 국가 단위로 분산되어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규제가 없는 자유로운 시장을 추구할수록 단기적으로는 글로벌경제가 활성화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점점 더 자본주의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그 부작용을 되돌아 갈 수 없을 정도까지 증폭한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은 손’이 불완전하게나마 작동할 수 있게 한 것은 시장경제를 불순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외부의 존재가 그 본래적인 불안정의 발현을 어느 정도 억제했기 때문이다.>(382쪽)

저자는 규제를 철폐하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라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오히려 특수한 자본주의 형태이며, 각국의 고유한 경제 제도를 남겨 놓은 채 서로 인정하는 유럽의 ‘상호승인’방식을 도입하자고 말한다.

(사진 좌측) 마르크스

문단이 바라본 금융 위기

문예지 ‘문학과 사회’가 특집 주제를 ‘마르크스의 귀환?’이라는 사회과학, 그 중에서도 마르크스로 삼은 사실은 자못 흥미롭다.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는 발간사에서 “마르크스의 귀환은 선언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비판적 이론과 실천 사이의 깊은 간격 속에서 다시 비평적인 개입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강성윤 이화여대 연구교수는 칼럼 ‘탈근대, 마르크스, 마르크스의 귀환?’에서 지금의 세계적 공황상태는 자본주의의 체제에 내재한 모순이 발현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강 교수는 19세기와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를 비교하며 “현재와 같은 사태의 근인(根因)은 자본주의가 기계제 대공업 단계에 들어선 이래 주기적인 공황과 수 차례 걸친 전쟁에도 불구하고 누적적으로 확대되어온 과잉생산”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과잉생산의 누적과 이윤율 하락은 한편에서 자본가들끼리의 경쟁의 격화로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적 영역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과잉화폐자본들이 증권이나 부동산 같은 비생산적 부문에 몰림으로써 투기붐, 즉 거품을 낳는다.>(361쪽)

따라서 “(21세기) 모든 공황은 결국 금융, 신용 부문에서 처음 폭발하며 금융위기, 신용위기라는 형태로 나타난다”(361쪽).

그는 ‘금융 세계화’란 금융 자본의 세력이 갈수록 커짐에 따라 국내외적인 자본 이동의 규제가 철폐되면서 세계적 수준의 수탈기구가 확립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생존을 위해서는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지만, 그 개입의 결과로 이전과 같은 불붙는 듯한 호황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 진다고 말한다.

이는 ‘글로벌자본주의에서 규제 철폐가 실은 점점 더 자본주의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그 부작용을 되돌아 갈 수 없을 정도까지 증폭한다’는 나카타니 이와오의 분석과 일면 같은 지점이다.

강성윤 교수는 여기에서 한걸음 나아가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의 한계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는 “신자유주의란 장기 불황에 직면한 자본가 계급이 위기관리 방식의 변화를 추구한 것에 불구하다”며 “19세기 마르크스가 제시한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과 공황에 대한 분석은 21세기 초 현대 자본주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결론 내린다.

특집에는 이밖에 두 명의 전문가의 글이 더 실렸다. 김세걸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대우 교수는 ‘마르크스의 이중 문법과 탈근대적 독해’에서 마르크스주의가 탈산업사회에서도 대안적 기획으로 논의될 수 있는가를 살핀다. 김태환 서울대 독문과 교수는 ‘상부구조/토대 모델의 재구성’에서 마르크스주의 사회이론의 핵심인 ‘상부구조와 물질적, 경제적 토대의 대립’의 문제를 재성찰한다.

마르크스의 유령이 배회하나?

그렇다면 한일 지식인 사회에서 다시 마르크스의 유령이 배회하는 것일까? 대답은 ‘낫 옛(Not yet)’이다.

김세걸 교수는 여름호 특집에서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약점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적 정책들을 내부화함으로써 복지자본주의로 진화해갔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진화과정을 기억하는 이론적 그림자로 남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특집은 금융 위기상황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한계, 적응력을 마르크스 이론을 토대로 재성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나카타니 이와오는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에서 “나는 구조개혁 그 자체를 전면 부정하게 된 것은 아니다. 격차 확대를 조장하여 일본 사회가 공들여 키워온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는 것을 방치하는 개혁에는 찬성할 수 없게 됐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가 지적하는 지점은 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세계화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글로벌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국가들의 자본 착취인 셈이다.

한일 양국의 글로벌 자본주의체제에 관한 논의가 어떻게 발전할지, 주목해 보자.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