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욕망과 쾌락 아닌, 슬픔과 고통의 철학으로 진리에 이르는 방법 모색

대학시절 처음 그를 만났다. 훌륭한 선생이 있다는 풍문을 접하면 그 어디를 막론하고 한달음에 달려가 몰래 청강을 하던 열혈청년 시절이었다. 강의를 듣기 위해 여러 곳에서 모여든 학생들을 그는 친구처럼 대했다.

기존의 권위적이고 엄격한 선생의 모습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습관처럼 몸에 배인 겸손함과 기품 있는 태도. 그의 음성은 나지막하고 부드러웠지만 힘이 있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우리나라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수입 오퍼상처럼 펼쳐놓는 서양철학의 오만하고 현란한 궤변과 제스처를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주류 철학의 흐름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그는 그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다른 철학자들이 욕망과 쾌락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놀랍게도 그는 참다운 자유에 이르는 방법으로 슬픔과 고통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를 ‘슬픔의 철학자’로 내 마음 속에 아로새겨 놓았다.

‘호모 에티쿠스(윤리적 인간의 탄생)’와 ‘나르시스의 꿈(서양정신의 극복을 위한 연습)’에 이어 나온 이 책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에서 김상봉은 그리스 비극의 근본적인 에토스(윤리)가 자유의 이념, 정확하게 말해서 정치적 자유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가장 심오하고 숭고한 예술은 정치적 예술이며 정치적 예술이란 궁극적으로 만남을 지향하는 예술인데 ‘나’와 ‘타인’의 진정한 만남은 오직 슬픔과 고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인간을 가리켜 정치적 동물이라 명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와 그는 정치를 나와 네가 만나 우리가 되는 행위로 해석하고 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자유로운 시민들이 더불어 자기가 사는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공공적 삶을 스스로 형성하는 것이 정치이다.

그러니까 정치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공동체에서만 가능한 일이고 그리스 비극은 그러한 공동체에서 태동한 예술이었다는 것. 그러하기에 그가 바라보는 아테네의 비극시인들은 시인이기 전에 시민이었으며 예술가이기 전에 정치가요 군인이었다. 곧 예술과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의 예술이 그리스 비극이었던 셈이다.

니체와 들뢰즈는 슬픔을 치유되어야 할 정신의 질병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김상봉은 회상의 체험과 슬픔의 확인, 이를테면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 지극하게 생각하고 반성하는 가운데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그의 철학에 기대자면 이 나라에서 정치가 실종된 이유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스스로를 성찰하는 자세와 태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이 당하는 고통이 결국 자신의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우리는 그로부터 진정한 삶의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최창근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