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섬초롱꽃

문득 울릉도 생각이 났다. 그 섬에 처음 간 것이 20여년 전 이맘 때였다. 그땐 섬을 둘러 길이 난 곳도 많지 않고, 도동에서 나리동을 가려면 배를 타고 가서 하루종일 걷거나 아예 성인봉을 타고 넘는 방법뿐인 시절이었다. 길이 먼 만큼 때묻지 않고, 번잡스럽지 않은 그런 섬이었다.

식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후, 오메불망 그리던 울릉도에 가서 가장 처음 가장 감격스럽게 만났던 식물이 바로 섬초롱꽃이었다. 항구에 내려 미처 숲길에 들어서기도 전에 그 언저리에서 나를 반겨주던 섬초롱꽃. 그 식물과의 첫 대면이었으나 나는 한눈에 알아 봤다. 뭍에서 본 적이 없는 초롱꽃을 닮은 식물이니 당연히 섬초롱꽃이 아니겠는가.

섬말나리, 섬백리향, 섬조릿대, 섬단풍 … 그렇게 “섬”자만 붙이면 되는 신비로운 울릉도 식물들과의 감격적인 만남은 식물 공부를 시작하고 마음에 담은 감동의 장면 중에 손꼽히는 순간으로 들어간다. 그 섬초롱꽃이 피는 때가 되었다. 대학에서의 학기말고사가 끝나는 바로 그때.

섬초롱꽃은 초롱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키는 무릎에서 허벅지 높이쯤 큰다. 한 포기가 자라기도 하고 혹은 여러 포기가 모여 한 무더기를 만들며 자라기도 한다. 유명하고 아름다운 우리 꽃 초롱꽃과 비교하면 기다란 종모양의 꽃이 유백색이 아니라 연한 분홍색이며 자갈색의 점들이 가득한 것이 차이점이다.

언뜻 보면 초롱꽃은 꽃잎 끝이 약간 안쪽으로 들어온 듯하고, 섬초롱꽃은 바깥쪽으로 벌어진 듯도 하다. 물론 개체마다 차이가 있긴 하다. 꽃잎이 백색에 가까운 것을 흰섬초롱꽃, 보다 자주빛이 많이 나는 것을 자주섬초롱꽃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귀하디 귀했던 섬초롱꽃은 울릉도가 많은 이들이 찾아가 이제 더 이상 신비하게는 느끼기 어려운 섬이 되었듯 낯설고 희귀한 식물에서 벗어났다. 우리꽃은 심은 정원이면 어디나 만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초롱꽃보다 강건하고 꽃이 오래 피며, 초롱꽃처럼 진 꽃들이 누렇게 달려있는 모습도 아니어서 관상용으로 아주 좋은 소재로 이름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꽃도 보기 좋고, 다소 독특하며 높이도 적절하여 화분에 심어도, 화단에 심어도 심지어 꽃꽂이의 소재로도 이용이 가능하다.

더욱 멋진 일은 먹을 수 있는 식물이라는 점인데 어린 잎을 나물로 먹는 것은 물론이고 꽃은 요리의 재료로도 쓴다. 특히 아름다운 통모양의 꽃 속에 고기나 이런저런 소재의 속을 넣어 함께 먹으면 맛도 멋도 함께 줄길 수 있다.

이 특별한 식물은 우리나라 특산이지만 학명이 “Campanula takesimana Nakai” 이다. 속명 캄파눌라야는 집안을 대표하는 이름이고 종을 닮았다는 뜻이 있으니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종소명 다께시마와 명명자 나까이라는 이름은 나라 잃은 시절에 우리 것을 우리 것으로 알아보고 갈무리하지 못했던 아픔이 그대로 담겨 있다.

독도문제도 그렇지만, 정말 아무리 어려워도 한쪽에서는 차근차근 긴 안목으로 해나가야 할 일들이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아름다운 섬초롱꽃 구경과 감상에서 시작했는데 너무 심각한 문제로 빠진 듯도 하다. 이상하게 요즈음은 매사가 이렇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