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신작 '도가니' 출간 소설가 공지영기득권과 유착된 시스템이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현실 비판

픽션이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픽션이 있다. 악한 인간들과 그들에 통제되는 시스템, 착취와 억압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약자들의 이야기가 그렇다. 대개 모든 작가들이 이런 이야기의 끝에선 그래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지만, 사실 작가 자신은 안다. 이런 사회에서 희망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픽션의 목적도 어쩌면 ‘희망을 기대하며 그래도 살자’가 아니라 ‘빌어먹을 세상아, 너를 증오한다’라는 비난과, 독자로 하여금 그 비난과 투쟁의 연대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데 있을지 모른다.

공지영 작가의 신작 <도가니>는 노골적으로 독자들에게 이런 연대의 제안을 하는 픽션이다. 아니 사실은, 몇 가지 은유로 치환되긴 했지만 이 소설은 픽션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추악한 단면을 까발리는 아픈 논픽션이다. ‘악마는 없다. 악한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누군가의 울적한 통찰처럼, 소설 속 등장하는 남성, 기득권, 시스템은 ‘악’의 전형이 어떤 모습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즐거운 나의 집>(2007) 이후 공지영이 2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 <도가니>는 비장애인의 사회에서 살며 그들에게 착취와 폭력을 당하며 살고 있는 장애아들의 참상을 다루고 있다. PD수첩에서나 즐겨 다룰 만한 소재고, 실제로도 TV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광주의 한 장애학교에서 자행된 성폭력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도가니>에서 실제 사건의 배경은 ‘민주화 운동으로 유명한’ 무진시(霧津市)로 바뀌어졌다.

물론 이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정한, 얕은 수준의 치환이다. 주인공이 서울에서 무진으로 내려가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과 설정들을 따라가보면, 독자는 몇 장 넘기지 않아 이것이 ‘광주 사건’의 재구성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장애학교의 교장과 행정실장 형제는 장애아들을 성적으로 착취해 죽음으로 몰아넣고, 결국 시스템으로부터 면죄부까지 받는다.

취재를 위해 광주에 10번 정도 내려가 사건 관계자들을 만났다는 공지영은 작품 속 이들 형제와 같은 가해자들이 진실을 오도하는 걸 보고 우리 사회가 참 ‘후지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힌다. “피해자는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는데, 특수교육학까지 전공한 가해자들은 ‘원래 그 아이들(장애아)은 문란한 애들이라 우리한테 꼬리를 쳤다’라고 변명하는 걸 보고 악은 천하고 야만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공지영은 “현실 사회에서 침묵의 카르텔이 여전히 공고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도가니>를 쓰는 동안 ‘마음 먹고’ 이런 메시지를 담아냈다. 인과응보, 권선징악. 이런 교훈이 통용되지 않는 세상에 사는 독자는 소설에서라도 해피엔딩을 원할 수 있겠지만, 공지영은 판타지보다 사실을 택했다. 사회적 약자가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그에 착취당하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현실은, 그로 하여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소설에서 사건의 실제 배경인 광주 대신 무진을 끌어온 것은 한국문학사에 있어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상징하는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사회비판적 성격이 강한 만큼, 이를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독자를 상대로 대중적으로 풀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TV 프로그램이라면 1시간의 시청시간도 충분할 측은지심과 고통의 경험을, 독서를 통해 며칠동안 자처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도가니>는 그간 ‘인터넷 연재’라는 형식을 빌어 젊은 층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지난해 11월 26일부터 올해 5월 7일까지 포털 사이트 다음의 ‘문학 속 세상’에 연재돼 연 인원 1100만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호응도 높았다. 인터넷의 속성을 활용해 꾸준히 대중적 이슈를 만들었고, 한 권으로 묶인 책은 이를 다시 긴 호흡으로 읽기를 권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독자로 하여금 무거운 소재를 극복하고 책을 잡게 하는 힘은 베스트셀러 작가인 공지영의 호소력에서 나온다. 그는 꼼꼼한 취재와 특유의 대중적 감성으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평소 사회적 현안들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공지영은 작품마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작업들을 계속해왔다. 세 번의 이혼 전력과 같은 ‘낙인’은 그에게는 사형선고와 다름없었고, 이 같은 그의 처지는 곧바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사형수 캐릭터에 그대로 감정이입됐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작가의 동병상련적 태도는 이번 작품 <도가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저 아이들을 다시 개들에게 던져줄 수는 없잖아. (…) 판사 검사 변호사에게 과연 이사장 가족의 인권과 귀머거리 애들의 인권이 같을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절대 이길 수 없다고. 그래? 좋아. 판사 검사에게 변호사에게는 아니라도 우리에게는 이사장의 인권과 귀머거리 아이의 인권은 같아. 단 일 밀리, 단 일 그램의 차별도 안돼. 난 그걸 위해 싸울 거야.(266~67면) (<-- 다른 글씨체)

극 중 인물 ‘서유진’의 입을 통해 말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사실상 전혀 중립적이지 않은 시스템을 향해 있다. 작가는 기득권 세력과 긴밀하게 유착되어 있는 시스템이 약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결국 작품 속 주인공과 아이들은 기득권과 시스템의 공조에 일견 좌절하는 듯하지만, 작가는 그래도 “침묵의 카르텔을 주시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러지조차 못한다면 정말 약자인 ‘우리’들은 언젠가는 저 ‘개’들에게 던져질 수 있다고.

다음 작품으로 80년대의 박종철 치사 사건을 법의학도 시선으로 바라본 소설을 구상 중이라는 공지영. 주류에 속하면서도 ‘좌파’를 자처해온 그가 새로운 시선으로 재구성할 80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이 기대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