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모래의 여자'우리는 날마다 소멸되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이나

모래는 허공 속을 흐르는 불이다. 사그라지지도 꺼지지도 않는 불. 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재가 남지만, 모래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모래는 무덤처럼 집도, 나무도, 사람도, 가축들도 감쪽같이 뒤덮어버린다.

그것들이 완벽히 소멸된 뒤에도, 모래는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는다. 오히려 자신의 영역을 더 넓혀가며. 기껏해야 직경 1/16~2mm밖에 안 되는 모래는, 그렇게…… 쉼 없이, 조용하고도 확고하게 이 세상을 뒤덮어 압살하고, 끝내는 멸망시킨다.

그러니 모래에 집어삼키지 않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쏟아져 내리는 모래를 쓸어내고 퍼내는 수밖에 별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일본의 카프카라고 불리는 아베 코보의 소설 <모래의 여자>는, 어느 날 모래 구덩이 속에 갇힌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모래 구덩이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모래를 치워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인간의 실존에 대한.

일상이 모래처럼 내 존재를 갉아먹고 있는 것 같은 공포가 느껴질 때, 나는 <모래의 여자>를 찾아 펼쳐든다.

8월의 어느 오후, 해안가 모래 언덕에 자리한 기이한 마을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남자가 그곳까지 찾아온 목적은 모래땅에 사는 곤충을 채집하는 것. 남자는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계략으로 여자 혼자 사는 모래 구덩이 속 집에 갇힌다.

“이 집은 이미 죽어가고 있다…… 끊임없이 흐르는 모래의 촉수가 내장의 거의 절반을 파먹었다……. 평균 1/8mm란 것 외에는 형태조차 제대로 갖고 있지 않은 모래……. 그러나 이 무형의 파괴력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무엇 하나 없다…….”

날이 밝는 대로 그곳을 떠나려 했던 남자의 계획은 허무하게 무산된다. 모래 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인 사다리가 치워진 것. 남자는 그곳을 벗어날 기회를 틈틈이 엿보며 여자와 함께 모래 치우는 일에 매달린다. “아무리 쓸고, 치워도, 끝이 없어요……” 라고 말하는 여자는 남자에게 또 다른, 어쩌면 모래보다도 소름 끼치는 덫이다.

모래 치우기를 그만두는 순간 집이 붕괴되기 때문에,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모래 치우는 작업을 돕고 나선다. 남자는 어떻게든 모래 구덩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자를 인질로 삼기도 하고, 꾀병을 부리기도 하고, 차라리 죽어버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지긋지긋한 그곳에서의 생활에 길들어져가며…….

남자는 과연 모래 구덩이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남자가 탈출에 성공한다면, 남자를 기다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남자가 갇힌 모래 구덩이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거대하고 집요하며 권태로운 일상이 아닐까. 우리는 사실 날마다,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끊임없이 쏟아지는 모래와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모래에 갇혀 소멸되지 않기 위해 쓸고, 치우고, 퍼내며…….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는 수상소감에서 “만약 오오카 쇼헤이와 아베 코보가 살아 있었다면 이 상은 그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고 난 뒤면, 그 누구든 오에 겐자부로의 말에 흔쾌히 수긍을 보낼 것이다.



김숨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