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다이어트의 여왕' 출간 소설가 백영옥날씬한 몸 강요하는 사회서 살아남아야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고종석은 지난 해 한 칼럼에서 “‘글이 곧 사람’이라는 말은 적중률이 매우 낮은 격언이다(한국일보 2008년 6월 12일자)”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 표현의 앞 뒤에 ‘이념의 해악이 인격의 넉넉함을 상쇄하고도 남는 자’와 ‘평균 이하의 도덕성을 지녔지만,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작품을 써낸 자’를 소개한다. 말하자면, 글이 언제나 글쓴이의 인격을 드러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서 인격을 성격이란 말로 바꾼다면, 우리 문학계에도 맞아떨어지는 표현인 듯싶다. 사실 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성격과 다른 작품을 써내고 있고, 종종 이 사실을 인터뷰에서 드러내기도 한다. 유쾌한 코믹 소설의 작가가 사실은 주기적으로 우울증을 겪고 있고 “내가 읽고 싶어 그런 소설을 썼다”고 말한다면, 독자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소설가 백영옥도 이런 맥락에서 작품과 개인의 성격이 다른 작가다. 그의 출세작 <스타일>은 패션잡지 기자의 일상을 그린 전형적인 칙릿이다. 등단 2년 만에 그는 이 작품으로 세계문학상을 받으며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이 작품과 ‘전직 패션잡지 기자 출신’이란 타이틀 덕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골드미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는 결혼 8년차 주부이자 전업 글쟁이다. 이 작품으로 상을 받기 전, 그는 일주일에 7개의 칼럼을 쓰며 밥을 벌었다.

맨 얼굴에 모자를 눌러쓴 채 집 앞 카페에 나온 백영옥 작가는 “이미지가 실체보다 힘이 세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글과 사람이 같을 거란 편견은 깼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김훈 같은 작품을 쓸 순 없잖아요

“<스타일>은 전형적인 칙릿으로 염두하고 쓴 작품이에요. 세계문학상은 일본의 ‘나오키상’처럼 대중성을 고려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는 신인이었고, 가독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장르문학 코드를 생각했어요.”

몇 편의 단편과 두 권의 장편에서 그는 2000년대 도시인의 삶을 말한다. 삼청동과 청담동 일대 카페와 레스토랑, 강남 일대의 빌딩, 피트니스클럽과 옷가게. 작품 속 주인공들은 이곳에서 먹고 마시며 인생의 고뇌를 견뎌낸다. 작품 속 인물들은 극단의 욕망 사이를 오간다. 이를테면, 마놀로블라닉에 열광하면서도 제 3세계 아이들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행동 같은 것 말이다. 작가는 “당대의 것들에 말하고 싶고, 현대인의 소통 방식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서울 도시인의 삶은 파리나 뉴욕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모두 자본주의 시대를 착실하게 살아가는 ‘길들여진 영혼’이란 점에서. 소비하는 인간, 트렌디한 인물에 대한 묘사는 독자들이 가장 열광하는 기제이자 그의 작품 앞에 ‘대중문학’이란 딱지가 붙는 지점이기도 하다. 세간의 평가에 대해 작가는 “모든 작가가 김훈 같은 작품을 쓸 순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많은 매체가 경쟁하는 상황에서 한국문학이 건강해지려면 작가군이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100년, 200년 남는 작품도 있고, 킬링타임(killing time)용 작품도 있고.”

몸이 먼저 말한다

이번에 그가 주목한 것은 다이어트다. 정확하게, 날씬한 몸을 강요하는 사회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여성의 이야기다. 장편 <다이어트의 여왕>은 그가 지난 해 말부터 올해 봄까지 7개월간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연재한 작품을 책으로 묶은 소설이다. 10부까지 연재했고, 반전이 담긴 11부를 책으로 묶으며 덧붙였다.

“다이어트가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재구성했는가를 말하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서 커피를 마시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시럽을 넣지 않죠. 칼로리를 생각해서 시럽을 빼고 마시다 그 씁쓸한 맛이 좋아진 거죠. 자기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부분이 사실 사회에서 강요된 취향 같아요.”

작품을 쓰며, 작가는 고백했다. 74kg이던 뚱뚱한 여고생은 20살 여름방학을 맞이해 55kg까지 몸무게가 줄었고, 21살의 실연 후에는 42kg으로 줄어들었다고. 작가의 몸무게는 23살에는 7개월 만에 61kg이 됐다가 다시 이듬해 48kg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말한다. ‘한 여자의 몸무게 변화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414쪽, 작가의 말)고.

“온 나라의 19살에서 20살 여자들이 집단적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나라라는 게 좀 신기하지 않아요? 지금 여성들이 자기 몸을 타자화한다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주제였어요.”

<다이어트의 여왕> 주인공 정연두는 작가처럼 지속적인 몸무게 변화를 겪는다. 85kg의 요리사는 98kg까지 쪘다 42kg까지 빠진다. 이 롤러코스터 같은 몸무게의 변화는 주인공의 ‘결핍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3년 사귄 남자친구에게 실연당한 후 허기진 마음을 음식으로 달랜 주인공은 방송작가인 친구의 요청에 못이겨 서바이벌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다. 축소된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그는 점차 파괴적으로 변하게 되고, 거식증으로 몸은 점차 말라간다.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서바이벌 프로그램 <다이어트의 여왕> 참가자들 역시 전략적 연합과 배신을 반복한다.

“한 인간 안에 선과 악이 모두 있는데, 어느 순간에는 선이 발현되기도 하고, 악이 발현되기도 하죠. 현대성의 특징 중 하나가 이런 모호함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소설은 해답이 아니라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은 행복한가?’, ‘우리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기준이 뭔가?’ 같은 우울한 질문을 20~30대 여성들이 열광하는 산뜻한 소재(맛있는 요리와 구두, 고양이 등)로 버무린 작품인 셈이다.

“욕망의 극단에서 끼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는 작가는 20~30대 한국 여성의 몸에 관한 또 다른 장편을 구상 중이다. 젊은 여성들의 욕망과 고민을 탁월하게 묘사했던 그의 솜씨가 새 작품에서는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해 보자.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