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현실'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지역주의가 실제 선거와 정치 지형에 발현되는 과정 분석

<만들어진 현실>의 저자 박상훈 씨는 사실, 출판사 후마니타스의 대표로 일반에 알려졌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민주화> 등 최장집 교수의 저서를 잇달아 출간하면서, 후마니타스는 짧은 기간 국내 지식인 사회에서 대표적인 사회과학 출판사로 자리잡았다.

또한 책을 만든 편집자들이 대개 사회과학 전공자란 점도 출판사를 각인 시키는데 한몫했다. 박상훈 대표 역시 대학에서 '지역주의'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최장집 교수, 박찬표 교수(목포대)와 함께 <어떤 민주주의인가>를 쓰기도 했다.

신간 <만들어진 현실>은 박상훈 대표의 단독저서다. 10년 넘게 지역주의 문제를 연구한 저자는 그간의 논문과 글을 보완해 이 책을 엮었다. 저자는 '영호남 갈등'이라 일컬어지는 지역주의의 상당 부분이 특정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위해 창조되고, 동원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서 지역주의가 만들어지고, 이데올로기로 굳어지며 실제 선거와 정치 지형에서 발현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는 사실의 차원에서 기능하는 측면보다, 인식의 차원에서 작위적으로 만들어지고 동원되는 측면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69쪽)

저자는 정치에서 문제로 삼고 있는 지역주의가 근대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근대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1950년대까지는 월남한 이북출신들이 편견의 대상이었지만, 1960~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호남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산업화로 인한 도시로의 이주는 주로 수도권과 영남의 산업벨트가 중심이었는데, 두 곳에서 생존과 정착, 취업, 소득을 둘러싼 하층의 이주민과 토착민 사이의 경쟁이 시작됐다.

수도권에 호남과 충청 출신의 농촌퇴출 인구가 집중되었다면, 영남 산업벨트에는 같은 지역의 농촌 인구의 내부 이동이 주를 이루었다. 반호남 정서로 대표되는 지역감정은 지역성 때문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영호남간 거리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민주화 이후였다.

# 한국의 정치 지형을 분석하는데, 왜 지역주의를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한가?

지역주의를 연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지역주의에 관한 특정의 해석 틀을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의 과거 경험과 주관적 느낌뿐만 아니라 객관적 역사조차 그러한 해석의 틀에 맞게 변형되어 기억한다는 것이다. 실제 역사보다 역사 해석을 둘러싼 투쟁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역사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의 해석을 필요로 하는 현재의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 한국에서 지역주의는 선거분석에서 득표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로 사용되는 것이 사실 아닌가. 특히 1997년 대선 때는 지역주의가 발현되는 게 득표로 눈에 보이지 않았나. 지역주의가 아니라면, 한 지역에서 특정 후보의 지지도가 90%를 넘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정치학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표를 해석하는 과정이다. 득표의 집합적 결과는 한 가지 요인만이 아니라, 복잡한 차원을 포함한다. 각 지역별 지지 정당을 대조적인 색깔로 나뉘어서 나타내는 것은 표의 집합적 결과를 지역색으로 환치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민주주의는 의견의 다원성이 만들어내는 물리적인 효과다.

국내 정치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정당 간 경제관, 국가관의 큰 차이가 없다. 이렇게 우리가 다른 선진국이 갖는 것 중 없는 것, 결핍된 요인이 우리 정치현상을 설명하는 면이 크다. 정당 간 이념의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 지역성이 득표에 요인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독점적으로 대표되는 정치구조에 '지역주의'를 어느 정도 독립변수로 만들 수 있느냐를 따져 묻는 것이 필요하다.

# 책을 집필하면서 심층면접도 한 것 같다. 면접에 응한 사람 중 몇몇은 "지역감정을 배제하고서는 대화가 안 통했다"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런 분들은 누구였나?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도 이런 반응을 보였나?

당연히 정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잘 안다는 건 자기 해석의 틀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이나 "지역주의 때문에 큰 문제다"라는 말로 자기 정치견해를 정당화했던 사람들은 이 의견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다시, 책을 돌아가 보자.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지역주의 극복 없이 정치 발전 없다는 담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1년 선거 직후였다. 선거에서 가까스로 이긴 박정희 정부는 선거에서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지역주의로 돌린다.

지역주의 망국론이 다시 등장한 것은 1980년 민주화의 봄 시기다.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컸던 당시 정치 상황을 3김으로 대표되는 정치지도자들이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지역감정을 불러일으켜 사회를 분열시키고 정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형국이라고 왜곡 해석한다. 이후 지역감정이 선거에 동원되는 메커니즘은 1987년, 1990년 3당 합당,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15대 총선, 1997년 대선으로 이어진다.

유신체제에서 시작된 지역문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진보세력과 재야세력이 여당으로 합류하는 대표적 기제가 된다. 이제 지역주의 망국론은 정치력과 주류언론에 한정되지 않고 진보세력과 시민운동, 지식인 상당부분으로까지 확대된다. 국면 전환내지 인위적 정계 개편의 욕구를 가질 때, 지역주의 망국론은 지속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지역이나 출신과 같은 1차적 유대가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구조나 조건을 문제 삼지 않고 선거 결과의 지역적 차이를 무작정 지역주의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사태를 왜곡하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다'(241쪽)고.

# 사실, 지역주의는 세계 보편적 현상 아닌가. 지난 미국의 대선에서도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지지 주)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닌 듯하다.

한국만큼 지역적 격차가 적은 나라도 드물다. 생김새, 말투에서 차이가 거의 없고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의 경제 수준도 비슷하다. 객관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동질적인 민족이면서, 엄청난 격차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국내 지역주의를 배타적이란 면에서 외국의 민족주의 운동과 비교해 볼 수 있는데, 민족주의 운동이 중앙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운동인데 반해, 국내 지역주의는 중앙에서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반대의 성향을 보인다. 우리나라 지역주의는 어느 지역 출신이 집권하느냐에 초점을 둔다.

# 그렇다면, 지역주의에 관한 저자의 대안은 뭔가?

어떻게 보면 쾌도난마식의 대안이 없다는 게 이 책에서 말하는 하나의 중요한 주장이다. 정치학에서는 원래 정당이라는 대표체계가 지역을 대표하게 되어있다. 우리는 '지역주의' 때문에 지역성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는데, 지역성 자체는 나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이 공간적 구조에서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오직 계급 정체성만 갖고 산다는 건 정말 공허한 일이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에는 내 가족의 숨결과 내 친구들과의 기억도 있다. 이걸 계급 정체성으로 어떻게 치환하나? 그 사람이 어디서 자랐는지를 아는 건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두 번째는 지역문제가 형성된 메커니즘이 지역성 때문이 아니라면, 이 문제를 만들어낸 기반을 찾아야 한다. '지역주의 해결하지 않고는 한국정치는 발전할 수 없다' 이런 태도는 문제라는 거다. 지역문제를 개선하는 것과 우리사회 보편적인 것을 고치는 것이 나란히 이해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지역주의를 해결하는 데는 오래 걸린다. 다른 강력한 대안이 없으면, 지역구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현대 정당 이론의 완성자인 사토리는 표가 지리적으로 큰 편차가 생기는 것은 체제의 이념 범위가 협소할 때 나타나는 일종의 부수 현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대안이 분명해지지 않으면, 지역주의는 해결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지금 권력의 문제가 다른 쪽으로 전가되지 않으면 지역주의가 오래간다. 때문에 한동안은 지역주의를 지역주의 그자체로 다루지 않았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