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우생학, 유전자 정치의 역사'히틀러·스탈린의 현대 유전학의 논리적 친연성 추적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과학 관련 서적들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서점에 나가봐도 전문가들이 일반 독자들을 위해 풀어 쓴 과학서적들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아예 대중과학서만을 따로 모아놓은 전시대를 만들어놓을 정도이다. 현대 사회는 과학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의 위력은 자연과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점을 뒤바꿔놓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겠다. 과학은 오늘날 대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분과학문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연현상이나 인간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과학의 인기와 과학 자체에 대한 이해는 과연 아무런 갈등 없이 행복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걸까? 한국의 경우를 놓고 본다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황우석 교수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세계적인 과학자가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모습은 국민 모두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황우석 교수 사건의 교훈은 진실과 거짓이라는 이분법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황우석'이라는 개인이라기보다, 줄기세포라는 '특허기술'을 통해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그 '신화'였다.

과학은 차고 넘치지만, 정작 과학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 꼭 필요한 책이 국내 학자의 손을 통해 나왔다는 사실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분명 반가운 일이다. <우생학, 유전자 정치의 역사>라는 책을 쓴 저자 김호연은 학부에서 화학을 전공했지만, 역사학에 관심을 가져서 과학사로 '전향'한 이력을 가진 소장학자이다.

이 책에서 김호연은 히틀러와 스탈린 모두에게 '우생학'과 현대 유전학의 논리적 친연성을 추적한다. 히틀러의 몰락 이후 우생학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과학이라기보다 미신으로 취급 받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우생학의 논리를 단순화시키고 역사화하는 태도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유전학의 논리에서 우생학의 이념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 새겨들어야할 지은이의 주장이다. 유전학의 지식과 기술이 상업화할 경우, 우수한 2세를 생산하기 위한 유전적 시술이 임상의학에서 일반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단순한 기우에 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남아선호사상이 성별검사를 통해 여아를 낙태시키는 일이 의학의 이름으로 일어난 것이나, 2세에게 미국 시민권이라는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원정출산도 불사했던 한국 사회의 현실은 유전학에 기초한 우생학이 남의 나라 얘기일 수 없다는 진실을 강변하고 있는 것 같다.




이택광 문화평론가,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