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왕고들빼기

왕고들빼기 꽃이 이즈음 한창이다. 깊은 산이 아니라 숲 가장자리며 사람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곳 저곳 자라며 꽃을 피운다. 흔한 듯 싶고, 평범한 듯 싶지만 알아두면 눈만 아니라 입도, 몸도 즐거운 그런 풀이다.

이 땅에 자라는 야생의 식물이지만 마치 마당 한 켠에 심어 놓은 상추처럼 항상 보고 먹을 수 있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꽃은 가을에 피지만 봄과 여름에도 그 잎을 볼 수 있으며 사람들은 꽃보다 먹을 수 있는 잎에 더 관심이 많으니 겨울을 제외하곤 일년 내 우리 곁에 있는 우리 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왕고들빼기는 국화과에 속하는 2년초이다. 우리나라 전역의 산의 낮은 곳이나 들에서 볼 수 있으며 이웃하는 중국, 일본, 러시아, 동남아시아까지 분포한다. 다 자라면 1m 높게는 2m까지도 키를 세우고 자란다. 참취나 곰취처럼 유명하진 않아도 먹는 잎은 알아도 꽃을 모르는 국화과 식물 가운데 하나이다.

사실 까다롭지 않으니 더 요긴한 식물이기도 하다. 왕고들빼기 입장에선 자신을 알아주려면 잎부터 꽃과 열매까지 그 고운 제 모습을 알려 주면 좋으련만…할 것이다. .

뿌리 근처에 달렸던 잎들은 꽃이 필 즈음이면 없어지고 줄기의 잎만 남는다, 서로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전체적으로는 피침형이지만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결각이 아주 심하다. 잎의 길이는 10~30cm, 폭은 1~5cm 정도 되는 데다가 잎의 밑부분은 줄기의 일부가 되어 싸고 있고, 뒷면은 털이 없는데도 분백색이 돌아 아주 독특하다.

꽃은 고들빼기 꽃을 닮았으나 더 크고 연한 노란색이다. 가는잎왕고들빼기라는 것도 있는데 왕고들빼기의 품종이지만 다른 특성은 모두 같고 잎이 갈라지지 않고 피침형인 것만이 차이점이다.


지방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우는데, 쓴 맛이 나는 채소여서 쓴동, 또끼밥으로 많이 뜯어주던 것이어서 토끼밥, 씀바우, 씀바귀 등으로 불리운다. 한자로는 백룡두(白龍頭), 고개채(苦芥菜), 苦馬菜(고마채) 등으로 부르며 영어 이름은 인디안 레튜스(Indian lettuce) 즉 인디안 상추이니 그들 역시 이 식물을 채소로 먹었나 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몇 해전만 해도 그저 산 가장자리에 혹은 들판에 피어나는 수수한 들꽃이려니 생각했던 이 꽃이 알면 알수록 좋다. 먹거리나 약으로 유용한 것은 물론이고, 꽃의 색깔이 화려하지 않고 많으면서도 보면 볼수록 깨끗하고 친근하다. 그러면서도 수술과 암술이 발달한 통상화(筒狀花) 부분은 귤색으로 진하게 성숙해서 꽃가루받이를 잘 하려고 하는 지혜로움이 돋보인다.

이 식물의 가장 큰 쓰임새는 역시 잎을 쌈을 싸서 먹는 일이다. 봄엔 워낙 유명한 쌈거리가 많아 관심을 모으지 못하지만, 다른 산채들이 질겨지기 시작하는 여름에도 여전히 부드러운 잎을 내어놓아 좋다. 집 가에 한 두 포기 정도 심어두면, 마치 황금 알을 낳은 거위처럼 자르면 잎이 또 나고 다시 잘라도 또 나고 하여 계속 먹을 수 있다.

단, 이 식물은 2년초여서 떨어진 씨앗을 잘 관리하여 심어야 지속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솜털이 붙어 날아간 씨앗이 많이도 새싹을 틔워내므로 구태여 따로 심지 않아도 마당 근처 어디선가 자라는 곳을 매년 '우리집 나물밭'으로 하면 된다. 연하고 깨끗한 잎새 몇 장 따서, 고추장에 참기름 넣고 싹싹 비벼먹으면 쌉싸름하면서도 향긋한 맛이 참으로 별미다. 김치를 담궈 먹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전초를 산와거라고 하여 약용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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