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알랭 바디우 '사도 바울' 특권적 아버지에게 평등한 아들로… '사건적 진리' 개념 통해 해석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300여일이 되어가고 있다. 살아서 가난했던 그 주검들은 죽기 직전 불태워졌으며, 죽어서는 9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냉동창고 속에서 얼어붙어 있다.

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데에 민감한 현정부와 그들이 부리는 공권력은, 가난한 자들의 삶과 죽음에는 이토록 무자비하다. 한 거대 교회의 장로가 현직 대통령으로 있는 나라에서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그에게 그리스도라는 존재, 그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는 <사도 바울>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라는 존재를 그의 독특한 철학적 개념인 '사건적 진리'라는 개념을 통해 해석한다. 바디우에게서 '사건'은 '진리'의 다른 이름이다. '사건'은 계획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발적이며, 그것은 역사적·문화적 상대주의를 넘어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보편성universel'의 다른 이름인 '진리'와 통한다.

이러한 '사건적 진리'는 선험적 기의가 아니라 언제나 상황적인 것에 관계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개별성'이 된다. 그런데 바디우에 따르면 이러한 '사건적 진리'는 충만함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질서의 '공백'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단절'의 사건이 된다. 바디우는 그리스도라는 사건을 하나의 '단절'로 해석한다. 그것은 무엇과 단절하는가?

그리스도라는 사건은 아버지가 아들로 임한 사건이다. 그것은 전능하고 특권적인 아버지의 죽음인 동시에 '평등한 아들들'의 세계의 시작을 알린다는 점에서 '단절'이다. 전능한 하느님을 자신들만의 아버지로 특권화하고 그를 위해 구축된 전래의 율법적 질서에, 그리스도라는 사건은 특권적 중심, 율법적 질서의 폐지와 공백을 초래한다.

바디우는 이 '사건'의 도래에 바울이 '주체적'으로 개입(참여)했다고 해석한다. 바울은 할례라는 표징(예언/기적)과 율법이라는 형식적 도덕을 통해 자신들의 세계를 선민적인 것으로 특권화하는 유대적 세계에 저항하며, 기왕에 주어진 지식들을 통해 고정된 세계 질서를 전유하려는 그리스적 세계에 파산을 선고한다. 바울의 '개입'은 특권적 질서에 맞선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며, 유기적으로 조직된 지식과 상식의 정치체에 '분열'을 도입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어떻게 그리스도라는 사건을 은총이라고 하는 순수한 '만남'으로 받아들이고 그 만남에 충실(fidélité)할 수 있었느냐다. 바디우는 여기에서 자신의 윤리학적 테제의 핵심을 발견한다. 순수하고 충실한 '만남'의 관건이 되는 것은 일상적 실존을 끈질기게 유지시키는 동물적 생존명령, 즉 이해관계를 넘어서 어떻게 '동물 이상'을 계속 욕망할 수 있느냐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라는 '진리'는 기적의 표징이나 성경 속의 화석화된 문헌학적 지식이나 성지순례의 대상이 되는 베들레헴의 말구유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특권적 아버지의 자리를 폐지하고 낮고 평등한 아들로 임한 그리스도라는 사건에 '참여(개입)'하는 일이다.

'구원'을 원하는가? 당장 아버지의 자리에서 내려와 '평등한 아들'이 되라.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동물로서 살다 죽으라는 당신 안의 죽음의 생존명령을 넘어서, 영혼의 불사(不死)적 존재, '참된 주체'가 되라.



함돈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