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내] 10편의 논문 속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철학자와 그 세계관 소개파르메니데스의 세계/칼 포퍼 지음/ 이한구 외 2인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3만 5000원

80년대 대학가에 마르크스가 있었다면, 90년대 대학가에는 칼 포퍼가 있었다. 그의 저서들은 철학과를 넘어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의 교양서로 두루 읽혔다. 비록 칼 포퍼가 남긴 메시지의 절반도 소화 못해도 말이다.

서양철학사의 거장인 그는 1930년대 유럽 사상계 중심에 있는 빈 학파의 논리실증주의자들에 맞서 반증 가능성을 중심으로 하는 방법론을 전개해 명성을 날렸다.

그리고 기념비적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철학적, 사상적 배경을 파헤쳤고, '열린 사회'의 최대 적으로 플라톤과 헤겔을 지목하며 전후 사상계에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신간 <파르메니데스의 세계>는 칼 포퍼 말년의 철학적 사상이 담긴 책이다. 그는 이 책 머리말을 통해 16살에 처음 파르메니데스의 시를 읽고 나서 '계몽된 눈'으로 셀레네(달)와 헬리오스(태양)를 바라보게 됐노라, 고백한다.

기원전 515년 경 태어난 파르메니데스는 이탈리아 남부 엘레아 출신으로 크세노파네스의 제자였다. 이 학파의 주요 관심사는 '변화하지 않는 존재'였고, 파르메니데스는 스승의 사상을 이어받아 이 세계관을 체계화시켰다.

철학계가 파르메니데스를 해석하는 데는 두 가지 흐름이 있다. 우주론적 접근과 존재론적 접근이 그것. 전자는 칼 포퍼가, 후자는 마르틴 하이데거가 대표한다.

칼 포퍼는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과 근대의 자연과학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데 반해 하이데거는 자연의 존재를 그 자체로서 드러내고자 했던 그리스의 자연 철학은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근대의 자연과학과 다르다고 해석한다.

칼 포퍼는 이 책을 통해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즉 그의 시에 나오는 두 가지 길인 진리의 길과 의견의 길(추측의 길)에 대한 발견의 중요성과 과학사, 특히 인식론과 이론 물리학의 역사에서 역할을 설명한다.

10편의 논문으로 구성된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철학과 과학에 대한 칼 포퍼의 비판과 문제제기, 현대과학과의 연관성 등을 문제로 삼고 있다. 그는 파르메니데스가 인식한 세계가 과학의 역사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을 살핀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위대한 철학자들, 크세노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를 중심으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기본 원소, 신의 문제와 같은 다양한 주제를 통해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철학자와 그 세계관을 소개하고 있다.

칼 포퍼의 글을 읽는 것은 고통스러우면서도 희열을 느끼는 일이다. 가장 험난하면서도 의미 있는, 그래서 '서양 철학사의 K2봉'이라 일컬어지는 파르메니데스 등반에 도전해 보자.

새로운 인생
잉고슐체 지음/ 노선정 옮김/ 문학과 지성사 펴냄

동독 3세대 작가 잉고슐체의 소설. 주인공 엔리코 튀르머가 누나인 베라, 친구인 요한, 약혼자 니콜레타 등 3명의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묶은 형식의 이 소설은 독일의 역사와 세계정세의 변화를 작가 개인사에 반영한 작품이다.

비발디의 처녀들
바버라 퀵 지음/ 박인용 옮김/ 이룸 펴냄/ 1만 2700원

18세기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그린 성장소설. 바이올린 연주자인 화자를 통해 비발디 모습을 그려낸다.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에서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는 고아 안나 마리아는 어릴 때부터 고아원 안에 조직된 악단의 단원으로 선발돼 마에스트로 안토니오 비발디의 가르침을 받는다. 그녀는 바이올리니스로 성장하고, 보살펴주던 라우나 수녀는 안나 마리아의 연주를 들으며 죽어간다.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박지우, 송호창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1만 5000원

<넛지>(Nudge)의 저자 카스 R. 선스타인의 신작. 이견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 조직과 사회마다 차이가 있고, 이견을 다루는 데 실패함으로써 집합적 부작용과 불행한 결과를 만든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견 없는 사회, 갈등 없는 조직이 아니라 이견을 제도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을 고찰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이견의 제도적 수용 과정에 관한 성찰을 이 책에 담았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