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외화 번역가 이미도교육효과와 이야기 재미 갖춘 만화 영어학습서 처음 선보여

취미란에 '영화감상'을 적는 사람이 아니라도, 외화 번역가 이미도의 이름은 들어봤을 터다.

한때 '국내 외화는 이미도가 번역한 외화와 이미도가 번역하지 않은 외화로 나뉜다'란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국내 주요 흥행 외화를 번역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작가와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가장 큰 리스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지금 카페 앞에 있습니다."

명동 근처 한 영화관 카페에서 만난 그는 청바지 차림에 커다란 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저녁에 있을 강연회에 쓸 자료 가방이란다. 이미도 작가는 지난 해 여름부터 울산 근처에 작업실을 얻어 그곳에서 번역과 집필활동을 하고, 서울은 대외적인 업무를 볼 때만 찾는다. 그가 지방으로 "자발적 유배"를 떠난 이유는 "시간을 밀도 있게 쓰고 싶어서."

"제가 올해 한국나이로 쉰이에요.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앞으로 10년으로 잡는다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거죠. 서울에서 평균 8시간을 번역과 저술에 매달린다면, 지방에 있는 집필실에서는 15시간, 16시간을 할 수 있더라고요. 그럼 서울에서 15년, 20년 동안 활동하는 것과 같잖아요? 그래서 떠난 거죠."

작업실에서의 하루 일과를 물었다. 아침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읽고, 하루 스케줄을 짠다. 신문과 월간지 연재 칼럼 집필, 산문집에 넣을 원고를 쓰고, 블로그를 업데이트 한다.

최근 번역하는 외화 작품은 뮤지컬 영화 <나인>과 로맨스 영화 <리바운드>. 각각 내년 초와 밸런타인데이에 개봉할 예정이란다.

2004년 <등 푸른 활어 영어>를 낸 후 집필활동을 차츰 늘리다 이제는 칼럼과 단행본 집필이 활동의 7할을 차지한다고. 국내 외화번역 1인자로 대기업 임원급의 수입을 받았던 그가 '창작'에 정성을 들이는 이유가 뭘까?

"영화 에 이런 말이 있어요. 'The biggest risk in life is not taking one.' 인생의 가장 큰 리스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리스크는 위험이란 뜻도 있지만, 도전이란 뜻도 있거든요. 안정적인 삶에 안주하면 제 발전이 없잖아요. 영화 번역 경험이 책을 쓰는데 도움이 되지만, 창작을 하면서 번역도 더 풍부해져요. 어휘력, 문장력이 번역에 반영되거든요."

달콤한 영어의 맛

최근 그가 시작한 도전은 영어학습서, 구체적으로 어린이용 만화 영어학습서 시리즈 <이미도의 아이스크림 천재영문법>이다. 외화번역가가 학습만화를 쓴다는 사실이 뜬금없이 들린다면 필자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미군부대 통역관으로 일했던 아버지 밑에서 영어를 배웠던 그는 사람들이 택하지 않는 방법으로 영어를 터득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하루에 영어단어 50개, 100개를 무작정 외우는 게 아니라, 하루에 한 단어를 영어로 풀이하고, 영어 단어가 들어가는 문장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문법 역시 주어와 술어로 나누는 분석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장을 만드는 통합형으로 배웠다고. 명사에 대한 개념을 익힌 다음, 동사를 배우고, 이 둘을 합쳐 문장을 만드는 법을 깨우친 후 형용사와 부사를 알고 접속사를 배워 긴 문장을 쓰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저자는 이 통합형영문법을 뼈대로 이 책을 썼다.

그는 이번 시리즈를 위해 직접 이야기를 만들고, 글을 썼다. 또 이제까지 번역한 숱한 영화 속 장면들을 패러디했고, 영화 속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며 재미있게 영어를 익힐 수 있도록 했다. 그는 "460여 편의 외화를 번역하며 읽은 시나리오와 칼럼 집필, 예전 시나리오를 썼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며 "이제까지 해온 일들이 이 시리즈를 위한 준비과정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학습만화가 교육효과와 이야기의 재미, 둘 다 갖춰야 하잖아요? 이 책은 1권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는 시리즈물인데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드는 데 푹 빠져 있어요."

이 책의 주요인물은 영어 울렁증이 있는 칠렐레팔렐레 마녀, 백설공주를 패러디한 백살공주 할머니, 일곱 난쟁이를 변형한 일곱 아이들(idol)이 등장한다. 영화 <타이타닉>, <해리포터>, <슈렉> 등 영화 장면 패러디도 시선을 끈다.

인터뷰 중간, 번역한 영화 대사를 인용하며 말을 이어가던 그는 책 이야기가 나오자 앞으로 출간될 2,3 권 이야기를 소개하느라 말이 빨라졌다. 영어의 명사와 동사가 소개되는 2,3권은 원고를 넘기고, 최진규 작가가 만화 작업에 들어갔다.

광운대학교 미디어콘텐츠센터 산하 출판사 '파우스트'가 발간하는 첫 책으로 이후 어린이 교육용 방송콘텐츠, 애니메이션, 인터렉티브 교육프로그램, 게임, 공연문화상품 등 교육용 문화콘텐츠 상품으로 개발될 예정이라고.

"월트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드림웍스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도맡아 번역하면서 기발한 상상력에 놀랐어요. 아인슈타인이 5세에서 10세 어린이의 상상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말했다고 하죠. 그런 어린이를 타깃으로 만든 영화이니 얼마나 창조력이 뛰어난 작품이겠어요.

상상력의 한계를 넓히는 이야기들이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매혹시키는 것을 보면서 저도 그런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이 시리즈가 인정받는다면, 30-40권 계속 선보일 생각입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