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40억 대 시장, 단일 브랜드로 꾸준히 사랑받아민음사 독점체제에 문학동네 등 도전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지난 주 문학동네가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출간했다.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은 영미, 프랑스, 독일 등 해외문학전문가로 구성된 편집기획위원과 근현대 문학작품을 위주로 소개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 해 을유 세계문학전집과 웅진 펭귄 클래식, 지난 달 출판사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출간과 맞물려 출판계에서 세계문학전집 출간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유가 뭘까?

왜 다시 고전인가?

국내 세계문학전집은 1955년 고금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전 4권)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세계문학전집이 활황세를 이룬 건 1960년대와 1970년대 2단 세로쓰기, 양장 제본의 정음사, 을유문화사, 신구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을 통해서였다. 이후 삼중당 문고로 대표되는 문고판, 1980년대 범우사, 일신서적, 혜원 등의 반양장, 완역본 시대를 거쳤다.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 세계문학전집 시장은 민음사가 독점적으로 맡아왔다.

10년 이상 '나 홀로 독주'한 이 시장에 최근 문학출판사들이 뛰어든 이유는 무엇보다 시장성이다.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가 2001년 대산문화기금의 지원을 받아 대산세계문학총서를 펴낸 것을 제외하고 을유세계문학전집(2008년 을유문화사), 웅진 펭귄클래식(2008년 웅진), (2009년) 등 출판사가 최근 1,2년 사이 세계문학전집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재 세계문학전집은 연간 130억~140억 원 대 시장을 형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일 브랜드로 꾸준히 사랑받는 출판사 효자상품 중 하나인 세계문학전집은 시장의 80%를 민음사가 선점하고 있을 정도로 독보적인 영향력을 지녀왔다. 이 수치는 온오프라인 판매수치를 토대로 한 것으로 홈쇼핑을 통한 판매를 합한다면 그 시장은 훨씬 더 커진다.

문학과 지성사 대산 총서
은 출간 첫해인 1998년 15권을 출간하고 판매 부수도 3만 4503부에 그쳤지만 그 후 2002년까지 매해 100%씩 판매가 성장해 2006년을 기점으로 연간 100만 부 이상 판매되고 있다. 세계문학전집은 번역, 발간되는 책이 쌓일수록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셈.

문학동네 강태형 사장은 "세계 문학전집은 저작권이 사라진 고전과 저작권이 남아있는 작품으로 나뉜다. 저작권이 사라진 작품은 중복출판이 될 수밖에 없고. 그 경우에는 번역의 질과 편집 질에서 승부가 난다. 저작권이 살아있는 타이틀은 어느 출판사에서 판권을 갖느냐가 관건이다"고 말했다.

해외 판권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민음사가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지난 주 문학동네가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하며 시장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5사 5색 문학전집

이제 5개 출판사의 문학전집 색깔을 비교해보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은 3년간의 기획에 걸쳐 시장에 나왔다. 김우창, 유종호, 안삼환, 정명환 선생을 편집위원으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고전문학을 소개하고 있다. 오비디우스, 셰익스피어 등 고전문학의 대가부터 쿤데라, 마르케스, 오르한 파묵 등 현대문학의 거장까지 다양하게 아우른 기획과 순한글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번역으로 시장을 선점했다. 지난 11년간 230종이 발간됐고, 700만부 가량 판매를 기록했다.

민음사는 세계문학전집이 1990년대 이후 작품을 거의 다루지 않는데 착안, 지난 달 1900년 이후 출생 작가의 작품을 모아 '모던 클래식' 시리즈를 출간했다. 강우성(서울대 영문학), 류신(중앙대 독문학), 박성창(서울대 국문학), 박혜경(한림대 노문학), 송병선(울산대 서문학) 교수가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이 시리즈는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발표된 작품 중 대표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주제 면에서도 세계화 이후 인류가 새로 직면한 문제들을 다룬 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지난 달 가진 간담회에서 "세계화라는 주제에 가장 중점을 두고 세계화의 충격 이후 개인의 정체성 문제, 지방과 중앙의 문제 등을 다룬 작품을 차근차근 소개할 것"이라며 "전세계의 문학 팬들이 동시에 읽으면서 중요한 문학상을 통해 검증된 작품 위주로 목록에 넣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1차분으로 출간된 10권의 책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코맥 매카시의 <핏빛 자오선>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등이다.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은 5년간 준비 끝에 나온 시리즈다. 민은경(서울대 영문학), 박유하(세종대 일문학), 변현태(서울대 노어노문학), 송병선(울산대 중남미문학), 이재룡(숭실대 불문학), 홍길표(연세대 독문학), 남진우(명지대 문예창작), 황종연(시카고대)교수 등 언어권 별 문학전문가와 평론가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황종연 교수는 "세계문학이라는 이름에 값 하는 책을 내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들였다"며 "작품과 역사 선정부터 번역된 원고에 대한 검토까지 모든 과정이 편집위원들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1차분 20권에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괴테의 <파우스트>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비롯해 르 클레지오의 <황금물고기>, 옐리네트의 <피아노 치는 여자>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등 생존 작가의 작품도 다수 포함돼 있다.

최수철, 김영하, 김연수 등 소설가들이 번역한 문학작품도 맛볼 수 있다. 불문학을 전공한 최수철 소설가는 르 클레지오의 작품을 다수 번역한 바 있는데, 전집에서 <황금물고기>를 재번역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스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고, 김연수 작가는 레이몬드 카버의 <대성당>을 선보인다.

두 출판사가 다수 보유한 저작권과 기획위원으로 승부를 걸었다면, 문학과 지성사의 '대산세계문학총서'는 초역에 초점을 둔 전집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대산문화재단이 외국문학 번역 지원 사업을 시작하며 이 사업에 선정된 문학작품을 번역, 출간하는 일을 문학과 지성사가 담당한 것. 일본어판의 재번역이 아닌 원서를 직접 번역하는 데 초점을 두고 대산문화재단이 번역비와 출판제작비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초역이 전체 출간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프랑스 풍자소설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일본 고전소설의 한쪽 날개인 <헤이케 이야기>, 이보 안드리치의 명작 <드리나 강의 다리>등 국내 소개되지 않은 고전을 소개해왔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90종이 출간됐고, 20만부 가량 팔리며 대중성도 확보했다. 대산총서의 베스트셀러는 <서유기>로 5만 권 가까이 팔렸다.

한편, 웅진단행본그룹과 펭귄사가 합작해 만든 펭귄코리아의 펭귄클래식은 지난해 5월 첫 권을 내기 시작해 1년 반 만에 50권을 돌파했다. 문학 고전뿐만 아니라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 JS밀의 <자유론>등 인문, 사회분야의 고전을 포함시켜 차별화를 꾀한다. 판형 역시 문고판으로 기존의 다른 세계문학전집과 차이를 두었다. 을유문화사의 을유세계문학전집은 번역 수준에서 가장 신뢰할 만하다는 평을 받는다. 전문 번역가보다 해당 작가 전공자에게 번역을 맡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출판사들의 세계문학전집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변화를 주목해 보자.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