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3인 3색 신인 작가 열전김재영… 월경이 일상이 된 '세계 속의 타자' 그려박혜상… 아웃사이더 통해 현실의 숨겨진 세계 들춰내김기홍… 흐릿한 세계에서 진실을 찾아 나선 청춘

박혜상 소설가
통상 겨울은 출판 불황의 계절이지만, 이번 겨울만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풍년을 이룬다.

창비, 문학과 지성사, 문학동네 등 문학전문 출판사가 지난 주 펴낸 3권의 소설은 '오늘의 젊은 문학'을 말해주는 듯하다. 20대의 발랄한 상상부터 세계에 대한 통찰까지 이들이 빚어내는 이야기는 변화된 시대를 말해주고 있다.

뉴욕에서 마주하는 세계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한 작가 김재영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월경(越境)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세계시민.

그는 첫 소설집 <코끼리>에서 외국인노동자의 삶을 그리며 주목 받았다. 그가 4년 만에 두 번째 소설집 <폭식>에서는 '우리 안의 그들'에서 한걸음 나아가 '세계 속의 타자'를 그린다.

김재영 소설가
이번 소설집의 주된 배경은 미국 뉴욕. 작가는 자본의 논리가 횡행하는 시대가 어떻게 인간을 소외시키는 지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중심인 이 도시에서 역설적으로 주인공들은 자본의 흐름에서 배제된 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표제작 <폭식>은 초국적 건설기업에 일하는 민 팀장을 통해 자본에 흐름에 실존을 맡길 수 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내면을 그린다.

민 팀장의 화려한 삶 속에는 실상 과로로 몸이 굳어가는 희귀병을 얻었으면서도 다시 회사에서 낙오되는 것이 두려워 진통제를 삼키며 세계 건설현장을 누비는 고독이 숨어있다.

단편 <앵초>의 하윤은 9.11테러로 남편이 세계무역센터에서 목숨을 잃은 후 생존의 기로에 선다. 그녀는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외국인이기에 희생자 추모는 물론 시체수습마저 허용되지 않는 현실과 마주한다. 미국적 가치만 추구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더욱 절망에 빠진다.

또 다른 작품 <롱아일랜드의 꽃게잡이>에 등장하는 수와 싸브리나는 비참한 가족사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한국인 이미자들이다.

김기홍 소설가
민족주의적 발언으로 감옥살이를 한 교사 아버지 대신 미국에 이민간 삼촌에게 의지해 행복의 나라를 꿈꿔온 수, 그러나 파견근무 차 온 실제의 미국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삼촌이 의문의 익사체로 발견된 냉혹한 나라일 뿐이다.

타지에서 조국 민주화를 염원하던 아버지와 미국식 상류층의 삶을 꿈꾸는 어머니의 갈등 속에서 성장한 싸브리나 또한 수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과 마주하면서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7편의 단편을 통해 작가가 말하는 것은 자본의 폭력이 전세계적 차원에서 일상화된 세계다.

아웃사이더 눈에 비친 세계

<새들이 서있다>는 2006년 '제 6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박혜상의 첫 소설집이다. 등단작이자 표제작인 <새들이 서있다>를 통해 작가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나는 여고생. 나는 오랜 기간 아빠에게 성추행을 당해오고 있다. 엄마가 그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아빠는 병에 걸리는 천벌을 받지만 가족은 회복될 길이 없어 보인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하천의 가운데에 며칠이 지나도록 서 있는 새 한 마리를 발견하고 나는 친구들과 그 새가 서 있는 까닭을 확인하기 위해 하천으로 뛰어든다. 철사에 옭매어 있는 새. 나는 친구들과 그 새를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끝내 사체만을 꺼내온다.

소설집에는 화해를 통한 현실의 의미를 되찾는 메시지가 들어있다. 가령 <그녀는 떡볶이를 좋아해>는 공무원인 나에게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떡볶이를 먹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은 나는 입빠른 소리를 잘해 사회적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날 도교동창생 김주연이 별정직 공무원으로 상사가 돼 등장한다. 나는 과거를 떠올리고, 평범한 학생과 운동권이라는 다를 갈래를 통해 각자의 지점에 도착한 주연과 나의 내적 갈등을 일으킨다. 이 갈등을 통해 소설은 386 세대 사이의 화해를 청하고 있다.

<토마토 레드>, <전봇대 네트>, <붉은 강 건너다> 등 9편의 단편을 통해 작가는 현실 이면의 숨겨진 세계를 말한다.

베일에 둘러싸인 흐릿한 세계

김기홍의 장편 <피리 부는 사나이>는 제1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다. 작가는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마을의 구원이자 재앙이었다면 소설 속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구원인지 재앙인지 알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결국 명확한 판단은 유보되고 그것을 찾기 위한 의지만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 작품의 전반부는 막 대학에 들어간 청춘의 방황에 관한 이야기이며, 후반부는 주인공이 전 세계에서 테러를 벌이는 집단에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2004년 대학 신입생인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수연과 가까워진다. 수연은 한 선배의 생일 파티에서 우연히 본 한 남자에게서 기묘한 느낌을 받았고 다음 순간 기억이 끊겼다가 낯선 지하실에서 깨어난 경험담을 들려준다.

'나'는 학교에서 과 동기 정현을 하룻밤 상대로 대했다는 오해를 받고 따돌림을 당한다. 그러던 중 수연이 갑자기 사라지는데, 한참 뒤 수연은 '나'를 불러 자신이 파티를 하던 날 들은 이상한 피리 소리와 파티장에 불이 나 6명이 숨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녀는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현재 요양 중이다. 수연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은 오직 피리 소리의 남자만이 설명해 줄 수 있을 거란 믿을 갖고 있다.

'나'는 수연을 위해 정현과 함께 그 파티의 남자를 찾아 나서고, 소설의 배경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아 런던으로 옮겨간다. 주인공이 속한 현실 세계와 나중에 벽을 깨고 나아가는 바깥세상의 공통점이 있다면 흐릿하고 불분명하다는 것.

자신을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아는 듯 행동하는 주변 사람들, 비밀을 간직한 수연, 정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피리 부는 사나이까지 주인공을 둘러싼 사람들과 세계는 베일에 싸여 있다.

평론가 남진우의 평처럼, 소설은 잘 짜여진 스토리와 감각적인 문장, 동화적 모티프를 현대사화 증상과 관련 지어 풀어가는 솜씨가 탁월하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