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박영희의

아주 오래전 억울해서 울었던 적이 있다. 내내 울어도 억울했다. 잘못된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더 서글퍼졌다. 내 잘못이 아닌 오해들. 어둔 동굴 안에서 나는 웅크리고 앉아 밖으로 나가는 문을 잃거나 잠그려 했다. 아이였던 나는 막막하고 어둑하다는 것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도 세상은 잘만 돌고 돌았다. 이 세상은 거대한 우주 속에서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 자그마한 동굴. 어른들의 세계를 전혀 이해할 수 없던 나. 어른이 되도록 삶을 밀고 나가도 여전히 동굴 안에서 머물고 있는 나.

지난 1월 12일 중앙아메리카 아이티에 7.3의 강진이 발생했다. 극심한 빈곤의 땅은 균열되었고 사람이 사는 건물은 무너졌다. 약 200년 만에 발생한 강진은 수백만의 사상자를 냈으며 정확하게 피해자의 수를 집계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아이티의 참사는 지옥의 다른 이름이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은 구조대를 보내 긴급 구호를 시작했다.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지만 더 서글퍼졌다. 왜 허기진 아이들이 진흙쿠키를 먹어야 하는 나라에 이처럼 극복할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나는가. 가난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강진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은가. 그건 희망일 뿐 현실은 막막하고 어둑한 동굴이다.

아이티의 참사 현장과 비교하는 건 그렇지만 서울 한복판에서도 무수한 건물들이 무너졌고 계속 무너질 예정이다. 거기서도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인명구조대는 없었고 용역들과 경찰들만 오갔다. 거기엔 서민을 위한 정부가 없었다. 자유로운 이 세계에서 상처받은 자들이 울고 있다. 아파서 우는 게 아니지 않는가. 어디에도 소외되고 차별받는 자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 막막하고 어둑한 동굴을 왜곡하거나 미화시키지 않는 르포르타주가 매력적이네."라고 생각했던 얼마 전, 시인이면서 르포작가 박영희가 4년을 거쳐 기록한 르포집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를 만났다. 독일의 르포작가 귄터 발라프는 "정확히 관찰하고 기록한 현실은 가장 대담한 작가의 상상력보다 더 상상력이 풍부하고 언제나 흥미진진하다"라고 했듯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는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내가 동굴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더욱더 확인시켜줬다.

저자는 차별받고 소외된 삶의 현장과 인권의 문제를 진솔하고 담담하게 담아냈다. 또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까지 들춰냈다. 탄식과 눈물 젖은 목소리를 경청했던 저자는 "탄식과 분노, 절망의 목소리는 불혹의 나를 바로 세워준 회초리이자 죽비"였다고 말한다. 서글픈 이 목소리는 저자의 기록에 경청한 나도 후려쳤다.

누구에게나 삶은 녹녹치 않다. 개인마다 시차가 있으나 우리는 여전히 동굴을 헤매고 있는 중이고, 아무리 울고 울어도 풀리지 않는 울분을 어찌할 수 없고,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알 길이 없다. 그러니 나여, 억울하다거나 감당할 수 없다 해도 너무 슬퍼하거나 외면하지 말자. 제아무리 이 세계가 막막하고 어둑한 동굴일지라도 살아있고 살아가고 살아내야 한다면 어둠마저 자세히 들여다보자.



윤석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