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말채나무

비가 눈이 되어 이제 나무마다 가득 내려앉았다. 까슬거리며 흩날리는 눈이 아니라 나뭇가지에 착착 달라붙는 눈은 가슴이 뻐근할 만큼 아름답다. 아직도 이러한 감동에 주체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드는 자신이 신기하기도 하다. 눈은 많은 이들의 출근길을 고생스럽게 했지만 숲에서 조금씩 녹아내려 메마른 나뭇가지엔 생명력을 넘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당분간 산불 걱정에서 해방돼 설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산림공무원들도 많다.

말채나무는 늦은 봄날, 꽃이 피면 마치 흰 눈이 내려 앉듯 듯 나뭇가지에 가득하다. 그래서 풍성하고 아름답다. 층층나무과에 속하며 층층나무와 아주 비슷한 큰키나무이다. 주로 계곡에서 자라고, 이런 저런 나무들 틈새에서 잘 자라면 10m까지도 큰다. 그간 숲에서 층층나무려니 지나쳤던 나무를 조금만 자세히 보자. 잎이 마주 달려 있다면 말채나무이다.

말채나무는 흰 꽃이 풍성하고 아릅답지만 그물 같이 갈라지는 회갈색 수피로 구분하기도 한다. 잎도 고운데 아기 손바닥만 만큼 다소 큼직한 잎에는 네다섯쌍의 잎맥이 나란히 길고 선명하게 발달한다. 꽃이 진 다음 피는 열매도 좋다. 청색에서 보라색에 이르는 이런 저런 빛깔들로 변하다가 마지막에는 거의 검은빛이 나게 된다. 콩알 같은 작은 열매들이 원반 모양으로 달리고, 이 열매를 찾아오는 새들도 많아서 좋다.

말채나무는 정원수로 간혹 심거나 건축재나 기구재로도 이용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신선목이라고 하여 찾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 나무로 차를 다려 오래 마시면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직 신선이 된 분을 만나보지 못하였고, 한방에서 특별한 용도로 크게 활용하는 기록이 없으니 그 효과에 대해 무어라 이야기하기는 어렵겠다. 다만 독성이 없고 요오드 성분이 많은 편이어서 전통차로 쓴다고는 한다. 다른 이름으로 빼빼목, 피골목, 홀쭉이나무, 뫼조나무, 설매목 등등으로 민간에서 불리워진다 하니 가까이하였던 나무임에는 틀림없을 듯하다.

말채나무가 속한 집안의 학명은 코서스이다. 뿔처럼 단단해서 붙은 이름이고 목재의 질이 단단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나무는 겨울눈도 뿔처럼 뾰족하다. 그래서 꽃 지고 잎 진 겨울 산행에서 말채나무를 꼭 찾아보고 싶다면 나무에서 뿔처럼 뾰족하게 나온 겨울눈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충북 괴산에는 아주 오래되고 큰 말채나무가 있다. 나무의 크기로 나이를 알 수는 없지만 단양 우씨 문중에서 후손들이 번창하라고 심었다고 하고 500년은 되었다고 전해진다. 말채나무란 이름은 낭창거리는 줄기가 말채찍으로 적합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주마가편(走馬加鞭), 즉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면 더욱 잘 달린다는 의미로 심었다고 한다.

채찍은 더 잘하라는 격려의 뜻일 것이고, 설을 맞으며 혹시 어려운 일로 힘겨운 분들이 있다면, 그 분들에게 말채나무 흰 꽃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새 출발을 하라는 격려의 의미로 말채나무 이야기를 드린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