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하일지의 치밀한 문장과 세밀한 구조 몰입의 세계로 빠뜨려

<경마장 가는 길>을 처음 읽은 건 스무 살 때였다. 무서웠다. 이 한 편의 소설 때문에 그 말랑말랑한 나이에 온갖 보편적인 것들을 재미없어하기 시작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방어할 수 없었다.

집요, 라는 말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 같은 치밀한 문장에 머리를 얻어맞았고, 퍼즐처럼 짜놓은 구조와 장치의 세밀함에 다리를 걸려 자빠졌고, 부조리를 줄다리기 하는 주인공 R과 J의 블랙 코미디에 잘근잘근 짓밟혀야 했다.

소설 속 J의 대사 '그럼 저더러 어떡하란 말이에요?'와 유사한 심정이 되었던 것 같다. 그 낯선 세계 속에 잠겨 헤어나지 못하는 순간 어이없게도 내 달걀 같은 뇌리를 강타해 왔던 걱정은 이 소설 이후의 한국문학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닭 울음소리였다.

새파란 작가지망생 녀석이 그런 관념에 사로잡혀 수탉처럼 울어재낀 건 분명 '오버'였지만 나는 아직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해결하지 못할까봐 목젖이 다 후들거린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내게 새롭고 낯설었으며 심지어 그동안 읽은 모든 소설이 다 재미없게 느껴지는 기현상을 불러일으킬 만큼 매혹적으로 뇌리를 강타했던 것이다.

얼마 전 나는 다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다 우연히 이 책을 들고 들어갔는데 나는 오랫동안 나오지 못했고 나와서도 계속 붙잡고 있었다. 어디를 펼쳐서 읽더라도 나는 또 한 번 이 소설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기계적인 묘사로 일관되는 사실적인 문장이, 은유와 환상을 탐닉하는 내게 어쩌면 이렇게 절실할 수 있는가? 혹시 정교하게 계획된 함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소설은 기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문득 나를 아직도 몰입의 세계로 자빠뜨리는 이 소설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하지만 정밀한 분석력이나 점쟁이 같은 육감이라곤 없는 나로선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마도 이런 게 이 세상이고, 이런 게 인간이라는 고발, 그 소스라치는 감상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문학일 수 있고 문학이어야만 한다는 것 정도였다.

세월이 지났음에도 나는 이 소설 때문에 다시 한 번 지금까지 쓴 소설을 모조리 이면지 취급하고 싶어졌으며 이보다 문제적인 소설을 쓰지 않으면 바보나 다름없을 것 같다는 극단의 이해로 궁지에 몰렸다.

문득 또 '어떡하란 말이에요?' 라고 외치고 싶어졌다. 그리고 오랜만에 경마장에 가고 싶어졌다.

착잡한 심정으로 경마장 가는 길에 주인공 R이 쓰기 시작하는 소설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그가 말한 경마장은 어쩌면 이 도시에 있는 경마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시대에 있는 경마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바람 부는 오후에 하늘 아득히 떠가고 있는 신문지처럼 경마장은 지금 공중에 아득히 흐르고 있다.

나는 탁 하고 무릎을 쳤다. 쥬느세빠! (Je ne sais pas!)



박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