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팽나무

더디기만 한 봄이다. 매년 가장 먼저 꽃을 피워내는 키 작은 풀들을 보느라 땅에 눈길을 박고 다녔지만, 올해에는 나뭇가지 끝에서부터 찾아 보아야겠다.

아무도 모르게 봄에 살짝 피었다가 져버리는, 마음먹고 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 버리게 되는, 그런 큰 나무들의 아주 작고 소박한 꽃구경이 즐겁다.

그런 나무들은 비술나무, 오리나무 등처럼 풍매화여서 화려한 꽃잎을 가지지 않았다. 팽나무도 그 중에 하나다. 아직 연해서 말랑하면서도 연한 녹색과 연한 갈색이 뒤섞여 나는 잎과 함께 꽃이 핀다.

더욱 재미난 것은 암꽃과 수꽃이 각각인 단성화나, 암수가 함께 있는 양성화도 섞여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팽나무의 봄꽃 구경은 단순한 꽃구경에 그치지 않고 꽃마다 특징적인 성을 찾아내며 구분하는 재미와 신기함도 쏠쏠하다.

잎맥이 독특하여 잎만으로도 구별이 가능하다. 전체적으로는 손가락 길이 만한, 달걀 모양의 잎이 어긋나게 달리는데 잎의 좌우가 살짝 이그러져 있어 완전 대칭이 아닌 점도 특색이다. 잎맥은 중맥에서 여러 개의 측맥이 나란히 발달하는 보통의 잎들과는 달리, 각도를 좁게 아래부터 서너개 정도 발달한다. 잎 가장자리의 톱니도 윗 부분에만 있다.

팽나무란 이름은 열매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을에 익는 작은 구슬 같은 열매는 노란색으로 익기 시작하여, 붉은색, 갈색 등으로 성숙하여 보기 좋다. 예전에 그 동그란 열매를 가느다란 대나무 대롱에 차례로 넣어 대롱 속에 꼭 맞는 가지로 압축하듯 밀어내면 총알처럼 "팽"하고 튀어나가 '팽총'이라 불렀다고 하고, 나무 이름이 팽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닷가에 접한 남쪽 오래된 동네에 가면 팽나무란 이름보다는 포구나무로 더욱 알려져 있다. 내륙에서는 마을 앞에 서 있는 커다란 정자나무는 주로 느티나무이기가 쉬운데, 남쪽 바닷가 즉 포구가 가까운 곳에서는 팽나무가 그 역할을 해왔다.

이것은 팽나무가 바닷가 염분에도 강하고, 특히 그 목재는 단단하여 가공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배를 만드는 데는 오래도록 물에서 지내도 상하지 않은 아주 좋은 소재였다고 하니 이래저래 바닷가와 인연이 깊은 나무이다.

그래서 낙엽이 지는 큰 키나무인 팽나무는 오래 살며 가지를 넓게 펼쳐 자라는 거목이다. 그래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도 있고, 보호수로 지정된 것도 느티나무 다음으로 많다. 분재로도 이용을 많이 하고 수피와 잎은 한방에서 이용하며 무엇보다도 팽나무에 열매가 가득 열리면 이를 찾아드는 새들이 많아서 좋다.

이 열매는 영어로 슈가 베리(Sugar berry)라 하는데, 달콤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그 맛이 무척 궁금해진다. 아직 그 많던 열매 하나 따 먹어 보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다,

옛 사람들은 봄에 팽나무 싹이 기운 좋게 일시에 돋아나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고 한다. 부디 올 한 해도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그렇게 힘차고 풍요롭기를 팽나무를 바라보면서 기원해 본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