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내] '외양' '존재' 구분했던 서양 형이상학 전통에 의문제기

● 월드 스펙테이터
카자 실버만 지음/ 전영백, 현대미술연구회 옮김/ 예경 펴냄/ 1만 5000원

책의 제목인 '월드 스펙테이터(World Spectators)'는 본래 저자인 카자 실버만의 말이 아니다. 이 말은, 한나 아렌트에서 나왔다.

아렌트는 공간적으로 제한받지 않고 외부세계로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시각의 주체, 그리고 사회에서 책임, 의무, 권리를 지닌 주체를 철학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월드 스펙테이터' 즉, '세계관찰자'란 말을 지어냈다.

저자인 카자 실버만은 이 말을 전복시켜 자신의 사유를 풀어낸다. 이 전복이 블록버스터 급이다. 그녀는 '외양'과 '존재'를 엄격하게 구분했던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녀는 말한다. "바라보아야 존재할 수 있다"고. 이 책의 핵심은 바라보기를 통한 세계의 인식이다. 참고로 그녀 실버만은 국내에서 정신분석학 틀을 이용해 사진과 영화를 분석하는 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매일 만나는 대중문화, 사진과 영화를 새롭게 이해하는 하나의 툴이 될 수 있을 터다.

우선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저 유명한 알레고리, '동굴의 우화'를 전복시킨다. 평생을 컴컴한 동굴에서 살아온 죄수가 어느 날 갑자기 환한 바깥세상을 경험하고 다시 동굴에 들어온다는 옛날 옛적 그리스 이야기를, 그리고 죄수는 이제 바깥 세계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그 고통이 크더라고 세계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철학자의 사명이라는 전통적 해석을 저자는 '동굴 속 개별 죄수'에 집중함으로써 비틀어 버린다.

실버만은 동굴 속 죄수 각자는 주어진 세계에 던져진 존재로 모든 것이 제한적이고 부자유스럽지만, 적어도 자신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사물이 눈에 보일 때만 실제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녀는 말한다. "결국 세계가 나타나 존재하게 될지, 아니면 비(非)존재의 어둠으로 흐려져 사라질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 뿐"(15페이지)이라고.

보기, 즉 시지각은 말하기, 언어에 앞서는 것이다. 그녀의 다음 전복 대상은 성경이다. 흔히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언어측면이 강조되지만, 실버만은 동물과 새가 아담 앞에 먼저 보이고, 그런 다음에야 아담이 존재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주체는 개별자이지만, 또한 그가 속한 세계와 분리되어 있는 단독자가 아니다. 본다는 것은 언제나 주체와 대상, 타자, 세계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실버만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타인에게 비춰질 때만, 존재한다. 나의 존재는 타자의 존재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진공상태의 단독자보다 현실 세계를 사는 집합체 속 개별 주체를 강조한다. 개별적이면서도 사회 안에 집합적으로 살아가는 세계관찰자, 월드 스펙테이터는 동굴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언어 이전의 영역에서 언어가 나타낼 수 없는 존재의 근본 조건을 볼 수 있는 시각적 역량을 지닌다.

이 책의 부재는 하이데거와 라캉의 시각철학이다. 그러니까 그녀, 실버만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이데거와 라캉의 철학을 사유의 바닥에 깔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 하이데거와 라캉은 다시 플라톤과 프로이트의 사유에 기대고 있는바, 책을 읽어내기 위해 정신분석, 철학, 시각문화, 미술사 그리고 문학과 영화학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여행을 마칠 때쯤 동굴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죄수, 현상을 비틀어 볼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터다.

●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김별아 지음/ 좋은 생각 펴냄/ 1만 1000원

소설가 김별아가 에세이집을 썼다. 작가, 엄마, 여자로 살아온 그녀는 위로가 필요한 꽃다운 여성들, 상처와 시련으로 바닥을 치는 청춘들에게 희망을 말한다. '나는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 삶은 어제에 있는 것도 내일에 있는 것도 아닌, 바로 오늘에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말한다. '바로, 지금, 여기서 살아라!'

●위대한 한 스푼
제임스 솔터, 케이 솔터 지음/ 권은정 옮김/ 문예당 펴냄/ 1만 6000원

십이야 만찬에서부터 연말 성찬에 이르기까지 365일 미식가 일기를 통해 삶의 지혜, 문학적 쾌락, 역사의 순간에 감춰진 음식 일화를 소개한다. 타이타닉호 침몰 직전 최후의 10코스 성찬, 대영제국 빅토리아 여왕의 만찬과 발자크의 커피 사랑, 뒤마의 요리대사전 등 음식을 주제로 한 이야기의 성찬이 펼쳐진다.

● 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이택광 지음/ 글항아리 펴냄/ 1만 8000원

문화평론가 이택광이 쓴 인문학 가이드북. 저자는 지성과 이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 비평과 정신분석 이론을 결합한 이론 공부와 이론적 글쓰기가 생산성과 비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푸코와 들뢰즈 이후 등장한 지젝과 랑시에르 같은 새로운 사상가들이 어떻게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유산에 발을 디디는지, 과거의 이론과 현재의 정치 지형이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