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내] 자연을 보고 짐 내려 놓았던 작가, 김동리와의 추억 돌아보기

●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서영은 지음/문학동네 펴냄/1만 3800원

'나는 소설가로서 적지 않은 소설들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이 책은 이전에 내가 출간한 어떤 책하고도 같지 아니하다.(…) 이 책에 허구적인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400페이지, 작가의 말 중에서)

책의 끝머리에 쓰인 이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를 이 책으로 이끈다. 책의 끝머리부터 소개했으니, 또한 결론부터 말한다. 책의 부제는 '서영은의 산티아고 순례기', 그러니까 이 책은 "스페인의 서쪽 도시, 옛날에 야곱이 전도여행을 했던 길"(45페이지)을 따라 걷는 여행기이다.

서 씨가 2008년 산티아고로 길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작가로서 있어야 할 자리를 너무 멀리 떠나와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자각은 몇 년 전 한 신춘문예 심사 자리에서 시작된다. 심사위원들을 살펴보니 몇 달 전 다른 심사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었던 것. '그들이 나에게, 내가 그동안 심사를 너무 많이 해온 것을 깨우쳐 주었다.'(15페이지)

이쯤 되어서, 저자의 약력을 소개한다. 지금의 20~30대에게 낯선 이름일 테지만, 소설가 서영은은 1983년 <먼 그대>로 이상문학상을 받았고, 서른 살의 나이 차를 넘어 김동리(1913~1995)와 결혼한 그의 세 번째 아내이기도 하다.

서 씨는 1983년 전후 경제적 문제와 가족문제가 겹쳤을 때 산행과 명상으로 마음을 추슬렀고, 1990년 남편 김동리가 쓰러졌을 때도 말없이 걷는 것으로 인생의 위기를 극복해낸 경험이 있다.

이런 가운데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를 제안한 손위 제자인 'Y'와 길을 떠나게 된다. 떠나기 전날 밤, 유언장을 써 놓고서.

산티아고 길을 안내해 주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으며 자연을 보고, 짐을 내려놓았던 작가는 김동리와의 추억을 돌아보기도 한다. "호적상에 엄연한 그의 세 번째 아내였지만 여전히 그의 여자가 아니었"으며 "수많은 날들 저편에서 그는 항상 내 사는 집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린 감춰진 남자였다"고 말이다. 2008년 9월 말 집을 떠나 11월 한국에 돌아온 저자는 자신이 소유한 김동리의 유품과 자료를 모두 기증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 이 순례는 기실 여행이라기보다 자신의 많은 것을 '내려놓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성찰의 기록이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길을 걸었고, 그 화살표가 가리킨 곳에서 나를 벗어 던졌다. 그 결과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400페이지)라고. 종교인이 아닌 일반 독자에게도 울림을 주는 이유다.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느린 걸음 펴냄/ 7500원

지난 3월 10일 고려대 교정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란 제목의 선언문으로 학내는 물론 사회면을 장식한 김예슬 씨의 저서. 그의 선언은 순식간에 인터넷 커뮤니티와 트위터를 통해 퍼져나가며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그가 학내 선언문을 쓰게 되기까지의 과정, 오늘날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경쟁구도와 이 구도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또 하나의 선언문이다.

● 1인용 식탁
윤고은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 1만 원

젊은 소설가 윤고은의 첫 소설집. 회사에서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점심식사를 하는 사람을 담은 표제작 '1인용 식탁', 화자를 소설가로 삼은 '인베이터 그래픽', 꿈을 대신 꿔준다는 독특한 설정의 '박현몽 꿈 철학관'을 비롯해 9편의 단편이 실렸다. 장편 <무증력증후군>과 또 다른 다양한 상상력의 세계가 펼쳐진다.

● 상처적 체질
류근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 7000원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류근이 18년 만에 첫 시집을 펴냈다. 등단 후 활동이 거의 없었고, 대중의 뇌리에 기억되지 않는 그이지만, 기실 고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은 그가 쓴 시였다. 이 노랫말처럼 그의 시는 슬픔과 상처를 보듬어 대중적 감성으로 풀어낸다. "모든 슬픔은 함부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삼류"가 되고, 하여 "내 슬픔은 삼류다"('어떤 흐린 가을 비').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