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내] 타자와 공명하는 시 언어의 독특성 통해 관계와 미를 탐문

● 지독한 사랑
고명철 지음/ 보고사 펴냄/ 2만 3000원

제목이 눈에 띈다. 그냥 사랑도 아니고 지독한 사랑이다. 누가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나. 책을 펼쳐 저자의 사진을 본다. 덥수룩한 턱수염에 두꺼운 안경테, 듬직한 풍채. 사진만 봐선 '사랑'이라 내뱉지도 못할 위인 같다.

그가 사랑, 사랑을 외친다. 그 사랑이 어디로 향하는가. 저자의 약력을 살핀다. 그의 직업은 평론가다. 그러니 그의 사랑은 문학으로 향한 것일 터다.

'좋은 시는 우주의 상처받은 뭇 존재들을 치유한다. 그리고 도래할 삶의 새로운 세상을 꿈꾸도록 한다.'

책의 첫머리에 쓴 이 한 줄은 저자의 문학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가 보는 '좋은' 문학은 자아와 타자, 세계가 엮어내는 언어다. <뼈꽃이 피다>(2009), <칼날 위에 서다>(2005)등 일련의 평론집에서 그는 사회, 정확하게 오늘의 정치, 문화 변화와 이를 반영한 문학 텍스트를 분석했다.

신간에서 그는 2000년대 한국 시의 지형도를 그린다. 기준은 "시인만이 독점하는 시적 방언을 통해 지극히 나르시시즘적 미를 탐닉하는 게 아니라 타자들과 공명하는 시적 언어의 독특성을 통해 관계를 미를 탐문"(5페이지 머리말)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저자는 전위적 방식으로 우리말의 언어 미학을 쟁취하려는 시보다 쉬운 언어로써 우리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시를 '좋은 시'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1부에서 저자는 최근 몇 년 동안 문학계에 논의된 '시의 정치성'과 관련해 시의 윤리, 시의 전위성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정리했다. 이 정리는 앞으로 읽어나갈 비평-저자가 선택한 작품과 선정 이유-의 잣대가 된다.

2부는 2000년대 시적 정치 감각을 '좋은 언어'로 드러내고 있는 시인들의 시 세계를 조망하는 자리다. 저자는 재일 시인 김시종의 시선집 <경계의 시>와 송경동의 민중시, 손택수의 시와 조병화의 시집 <외로운 자들>, <후회 없는 고독>을 '좋은 시'로 꼽는다. 3부는 하종오, 김수열 김주대, 정윤천, 남태식, 박현덕 시인의 시집을 집중 조명한다. 4부는 문충성, 김사인, 도종환, 김수열, 이재무, 오승철, 손세실리아, 김영희, 고춘옥, 마경덕 시인의 시집에 대한 작품론으로 묶었다.

거론된 시인과 시집에서 보듯 저자의 선정기준에 부합된 '좋은 시'는 예전 80-90년대 민중시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 계보가 한국 문학의 한 축을 이루어 왔다는 점에서, 저자의 지형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전위적인 시는 이런 바탕 위에서 발견한 새로움이었고, 그 새로움이 특별함을 넘어 하나의 흐름을 이루었으니까. 그렇다고 이 책을 '문학계 지형도를 그리기 위한' 텍스트처럼 정독할 필요는 없다. 공부가 아니면, 어떠하랴. 그에게, 순정이 있는데.

'이것은 지독한 사랑이다. 좋은 언어로 채워진 좋은 시들이 갈수록 험한 세상에서 스러지지 않고 그 가치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좋은 언어와 좋은 시를 애타게 갈구하는 지독한 사랑 때문이다. 이 지독한 사랑이야말로 이러한 시적 정치 감각을 망각하지 않고 늘 깨어 있게 하는 시적 정념이다.' (6페이지)

●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임옥희 지음/ 여이연 펴냄/ 2만 원

책 제목을 스페인 망명화가 레메디오스 바로의 <채식주의 흡혈귀>란 그림에서 가져왔다. 저자는 현 신자유주의 시대를 돈의 포르노그래피가 만연한 폭력의 시대로 규정하고 그 안에서 인간은 타자를 삼켜야 하는 식인주체임에도 타자와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채식주의자 뱀파이어의 정치'에 비유한다. 모든 가치가 화폐가치로 환원되고 모든 활동이 생산성의 회로에 포획된 이 시대가 바로 대안적 가치를 모색할 때라고 말이다.

● 신의 용광로
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 함께 펴냄/ 3만 3000원

용광로는 여러 금속을 한데 넣고 끓여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크게 되는 곳이다. 저자는 유럽을 만든 이슬람 문명이 바로 그 용광로에 비유한다. 저자는 유럽을 만든 이슬람 문명 500년의 역사를 추적한다. 570년부터 1215년의 대장정을 통해 저자는 이슬람 문명이 유럽인 안달루스에 진출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등 여러 종교 신자들을 융합해 선진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 고백의 제왕
이장욱 지음/ 창비 펴냄/ 1만 원

시, 소설, 평론 등 전방위적 글쓰기를 선보인 이장욱의 첫 단편집. 독특하고 낯선 서정을 그린 2권의 시집과 달리, 그의 소설은 단정하고 단단한 문장과 선명한 이미지, 잘 짜인 구성으로 눈길을 끈다. 그리고 어느 틈에 일상과 환상, 진실과 거짓, 실체와 허상을 분간할 수 없는 기묘한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무의식적 발화를 그린 표제작 <고백의 제왕>을 비롯해 '제1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단행본 출간 전부터 이미 주목을 끈 <변희봉> 등 지난 4년 동안 발표해온 단편 8편이 묶였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