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술에 관한 객관적 지식 영화와 함께 전달

● 술꾼의 품격
임범 지음/ 씨네21북스 펴냄/ 1만 2000원

저자의 현재 직함은 '대중문화 평론가'와 '애주가'다. 책 앞 날개에 스스로 이렇게 덧붙였다. '이십대엔 술을 많이 마셨고, 삼십대엔 폭음을 했고, 사십대에 술을 즐기다가 지금은 애주가가 됐다.'

그런데 이 말은 대한민국 어느 직장인 앞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수사다. 술자리에서 한두 시간 술에 대한 애정을 늘어놓지 않을 40대가 있으랴. 그러니 이 책의 방점은 기실 술꾼보다 '품격'에 있다.

그 품격을 만드는 재료가 영화다. 18년 동안 기자로 지낸 저자는 신문사를 그만 둔 뒤 영화 일을 했고, 이 전공을 살려 영화와 술을 엮어 책을 썼다. 책은 술에 담긴 여러 기호들을 영화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고품격 알코올 에세이'다. 쉽게 말하면, 술에 대한 객관적 정보와 저자의 개인적 취향, 영화 소개와 감상평이 섞인 잡문이다.

책은 독주를 뜻하는 스피릿, 위스키, 폭탄주, 맥주, 기타재제주와 칵테일 등 6가지 테마로 나눠 술을 소개하고, 그 술이 등장하는 영화 25편에 대한 에세이를 담았다. 1장 스피릿 편에 나오는 술, 럼에 대한 저자의 입담을 구경해 보자. 저자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소개하며, 주인공 잭 스패로 선장(조니 뎁)의 손에 들려 있는 럼에 주목한다. 왜 하필 럼인가?

'럼이 처음 만들어진 게 카리브 해의 바베이도스 섬인데, 이 섬에서 나온 17세기 중반의 한 문건은 럼이 "독하고 지옥 같고, 끔찍한 술"이어서 그 별명이 '악마를 죽인다'는 뜻의 '킬 데블'이라고 전하고 있다.' (15~16페이지)

영화의 배경과 주인공 잭 스패로의 아이덴티티는 럼을 통해 은근히 드러난다. 책은 이처럼 술에 관한 '객관적' 지식을 영화와 함께 버무려 전달한다. 그 지식이 웬만한 백과사전을 능가한다. 잭 다니엘, 조니 워커, 바카디 등 술 상표로 귀에 익은 이름의 실제 주인공들이 어떤 시대에 살았는지, 싱글몰트 위스키는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우월한 맛을 가진 건지, 한국 폭탄주의 기원은 무엇인지 등등 술에 관한 지식을 풀어놓는다.

이 지식은 저자의 수십 년 간의 내공에서 빚어졌을 터,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편에 쓴 보드카에 관한 단상에서 그의 애주가적 면모가 드러난다.

'보드카의 숙취는 다른 술과 확실히 다르다. 내 경우에 보드카를 스트레이트로 많이 마신 다음날엔 머리가 아프거나 비위가 거슬리건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신, 어깨와 무릎 관절 같은 곳에 힘이 빠져 연체동물이 된 것처럼 흐느적거린다.'(23페이지)

책은 2008년~2009년 한 주간 신문에 '씨네알코올'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칼럼을 묶고 '칵테일 제조법', '꼬냑의 등급기준' 등 술에 관한 각종 팁을 더했다. 영화 속 '술 장면'에서 시작해 술의 유래, 특징, 비화와 감상(鑑賞)평으로 넘어가는 저자의 입담은 그 술을 마시던 우리의 기억과 어우러져 묘한 감상(感想)을 만들어 낸다. 이 책이 낮보다 밤에 어울리는 이유다.

● 멜랑콜리의 미학
김동규 지음/ 문학동네 펴냄/ 1만 8000원

저자는 '예술의 본질은 사랑의 결실'이며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고 말한다. 책은 이 시점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 속 여인들의 삶을 서사의 중심으로 삼아 "사랑하다 죽는" 인간의 삶 속에서 예술과 철학의 의미를 찾고, 이 과정에서 '멜랑콜리'가 어떻게 인간의 운명을 위무하는지 설명한다. 멜랑콜리는 자기 내부에 잉태된 미래의 타자에게 자신의 피와 양분을 공급하면서 얻게 되는 고통, 흥분, 일렁임, 고독, 우울이다.

●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아감벤, 바디우, 벤사이드 외 지음/ 난장 펴냄/ 1만 1800원

주지하다시피 이 책의 저자들은 오늘날 세계 지성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유의 거장들이다. 이들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들은 말한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꿈꾸는 텅 빈 기표일 뿐이라고. 여덟 명의 저자는 오늘날의 민주주의, 나아가 민주주의 이념과 시스템에 관한 사유를 풀어 놓는다.

● 미래를 여는 한국인史 (정치, 경제)
박세길 지음/ 시대의 창 펴냄/ 각권 1만 5000원

재야 학자 박세길 씨의 저서. 1996년 이후 여러 진보 연구기관에서 사회운동에 헌신했던 저자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이후 20년 만에 새 세대를 위한 민중사를 썼다. 정치, 경제 두 권으로 나눈 책은 1945년 이후 한국 현대사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며 저자는 최근 민주 정부에 대한 평가, 민주화 이후의 과제를 고민하지 못한 민주화 세력의 한계 등 한국 현대사 과제들을 짚는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