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카렌 쿠시맨 <너는 쓸모가 없어>외할머니의 외할머니의 외함머니의 역사를 위하여

기적이란 무엇인가? 물 위를 걷는 것인가?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하고, 봉사의 눈을 뜨게 만드는 것인가?

나는 이런 기적을 마귀의 기적 사이비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다면 진정한 기적은 무엇인가? 아무에게도 사랑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사랑의 힘!

여기 한 소녀가 있다. 소녀에게는 부모가 없다. 생일도, 몇 살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름도 없다. 두엄더미에서 나는 열을 이용해 추운 밤을 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녀를 쇠똥구리라고 부른다. 쇠똥구리, 쇠똥구리! 그래, 소녀의 존재는 벌레만큼이나 초라하다. 그녀는 왕따다.

장난꾸러기 사내놈들은 소녀에게 돌멩이를 던진다. (어느 동네나 그런 놈들이 있다, 아주 많다) 소녀는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수그린 채 사람들이 없는 길로만 다닌다. 세상은 너무나 무서운 곳이고 소녀에게 허용된 세계는 그녀의 발밑 조그만 땅뿐이다. 존재의 지평이라고? 흥!

그런 소녀를 거두는 것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가진 산파다. 좋은 말로 산파고 나쁜 말로 마녀다. 우리는 역사책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어느 국가에 관해서, 어느 왕에 관해서, 어느 장군에 관해서, 어느 전쟁, 어느 다국적기업에 관해서 또 그런 것들을 작동하게 하는 법, 행정, 문화에 관해서.

그리고 이 모든 것 이면에 있는 그-무엇에 관해 배운다. 우리는 가부장의 역사를 배운다. 그리고 가부장의 역사 이면에 있는 그-무엇이, 무엇인지 우리는 배우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안다. 여러분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바로 돈이다.

<너는 쓸모가 없어>의 저자 카렌 쿠시맨은 우리를 중세시대 영국의 외진 시골로 데려간다. 이성 대신 신이 지배한 철학의 암흑기. 하지만 우리는 카렌의 상상력 속에서 역사책에 나오는 것과 완전히 다른 중세를 만날 수 있다. 거기에는 교황도, 봉건군주도, 십자군도 없다. 그저 우리와 비슷한 욕망과 이기심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있을 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학교와 인터넷에서 얻는 지식을 그들은 생활 속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정도. 카렌 쿠시맨은 말한다. 중세가 암흑기라고? 아니, 중세는 사춘기 같은 거야. 벌써 그때를 잊은 건 아니겠지? 생각해봐. 너의 사춘기가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는지.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깨닫게 되지. 사춘기 때의 성장통이야말로 인생의 보석이었다는 것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역사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쇠똥구리는 외할머니의 외할머니의 외할머니의 역사를 배우라고 말한다. 남자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빼앗고 죽이는 동안 누군가는 쉬지 않고 아이들을 생산해왔다고, 그 중에는 바로 남자들도 있다고, 지금까지 모든 역사는 왜곡의 역사였고 이제는 역전돼야 한다고. (아, 수요집회가 생각나네요) 아무에게도 사랑받아 본 적 없지만 본능적으로 모든 약한 것들을 품을 줄 아는 쇠똥구리는 온몸으로 페미니즘의 역사를 증거한다.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무지한 스승'(철학자 랑시에르에 의하면)인 마녀 산파의 명언을 감상하면서 끝내자. 아니 계속하자.

"시도하고 위기에 처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수습생이 필요한 거죠. 산파가 포기한다고 해서 아기들이 세상에 나오기를 그만두진 않아요."

차라투스트라에게 사랑을 가르쳐주는 사람, 사랑에 배신당한 살인마 왕을 위해 밤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들을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재미있는 등식 하나 만들어볼까?

'사정하다 죽은 남자〈 분만하다 죽은 여자'

우리는 진정 누구의 자식인가. 참, 쇠똥구리의 진짜 이름은 앨리스다. 앨리스.



김점원 대학로 <이음아트> 공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