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최인호, 신달자, 룽잉타이 가족에 대한 단상과 기억 모아 에세이로

'저만큼 물러가다가 되돌아와 성급히 핀 여린 꽃잎을 할퀴던 지루한 겨울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천지를 뒤덮는 우리네 5월의 저 연두색이다. 처음, 시작, 출발의 색이 연두색이다. 초록을 향해 지금 막 솟아오르는 마음의 화살표가 연두색이다. 이런 5월을 가진 나라에 태어난 것을 늘 행복하게 여긴다.'

문학평론가 김화영 씨가 쓴 칼럼 '연두빛 봄을 만드는 선생님께' 중 일부다. '우리네 5월의 저 연두색'은 마르셀 푸르스트의 마들렌처럼, 우리가 경험했던 소중한 옛 기억을 부르는 신기한 매개체다.

연두색이 천지를 뒤덮는 5월, 출판가에는 유독 부모, 가족과 관련된 책이 많이 출간되는 이유다. 작가들이 쓴 가족에 관한 단상, 그 기억을 모은 에세이를 소개한다.

<천국에서 온 편지>

작가 (65)의 에세이집 <천국에서 온 편지>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 같다. 1987년 어머니를 떠나보낸 작가는 책에서 "그동안 여기저기 발표한 어머니에 관한 글을 읽던 중 혼자서 한참 운 적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최인호
작가는 "내가 쓴 원고를 통해 거의 지금 내 나이 또래의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니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솟구쳤다"며 그날 밤 서랍을 뒤져 어머니가 일흔 살 무렵 미국에 다니러 갔을 때 쓴 편지를 찾아냈다고 서두를 시작한다. 작가는 가족을 걱정하며 쓴, 맞춤법이 틀린 어머니의 편지를 읽고 "어머니의 편지가 내 마음의 우체통으로 도착하는 데는 꼬박 30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적었다.

'어머니 살아생전에는 단 한 번도 편지를 쓰지 아니했던 제가 이제야 편지를 씁니다. 그리운 어머니, 이제는 어머니를 생각해도 별로 눈물이 나오지 않아요. 어머니를 이별했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원할 때 어머니를 언제나 만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에요.'(213페이지)

작가는 가족에 관한 작품을 여러차례 발표한 바 있다. 자전 소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2004)와 월간 <샘터>에 소설 <가족>이 그것. 이 책은 기존에 다른 책으로 묶여 나왔던 작가의 원고와 그동안 발표하지 않았던 글을 절반씩 묶어 낸 것이다.

마흔여덟에 남편을 잃고 아들 셋, 딸 셋을 홀로 키웠던 작가의 어머니. 하지만 '높은 데서 떨어져 다리를 못 쓰시고, 당뇨에 합병증으로 눈도 잘 못 뜨셨는데, 어머니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준 자식들은 없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언제나 자식들이 입다 버린 헌 러닝셔츠만을 골라 속옷으로 입고, 먹는 음식은 내버려서는 안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책에 그려진다.

'늙은 어머니의 치마에서 나는 김치냄새와 음식 냄새, 당뇨환자들이 풍기는 달짝지근한 냄새 그리고 수고한 땀 냄새 등이 혼합되었던 일종의 고통의 냄새였다.'(126페이지)

룽잉타이
작가는 어머니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미안해요 엄마. 사랑합니다. 나의 어머니"라고 속삭인다고 덧붙였다.

<눈으로 하는 작별>

대만 문인이자 저널리스트 의 <눈으로 하는 작별>은 가족의 죽음을 겪고 난 뒤 심정을 섬세한 문체로 써내려간 에세이집이다. 2007년 한국을 찾았던 저자는 날카로운 감각과 촌철살인의 명쾌한 문장으로 정평이 난 중화권 비평가 겸 작가. 그러나 이번 에세이에서 그녀는 필치는 누구보다 감성적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가족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로 정의한다. 가족은 만나는 순간부터 크고 작은 이별을 겪지만, 언제나 그 이별을 '눈으로 지그시 바라보며' 사랑을 되새기기 때문.

그녀는 두 아이를 기르고,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보살피며 각기 서로 다른 '떠나보냄'의 과정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고백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난 뒤 대부분의 사회적 이슈들이 단지 사소한 곁가지에 지나지 않았다고.

신달자
'아버지의 죽음은 나에게 망망대해에 느닷없이 내리꽂힌 번개와 같았다. 번개가 어두운 밤하늘을 둘로 가르면 순식간에 명멸하는 빛 속에서 당신은 평생 몰랐던 가장 깊숙한 상흔, 가장 신비한 파편, 가장 난해한 소멸을 알게 된다.' (61페이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 늘 자신을 걱정해주는 친구,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는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저자는 삶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 애쓴다. 그리고 어느새 훌쩍 자라서 자신의 품을 떠나려는 아들을 바라보며 비로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이해해 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누구에나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눈으로 하는 작별'은 마음속에 사랑의 잔상을 오래 남기는 법이다. 그게 바로 가족이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나 자신도 자식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두려워서 하지 못했어요. 이번 책을 계기로 이런 당연한 말들의 의미를 생각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표현했으면 합니다."

에세이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를 내게 된 저자의 말이다. 저자는 책에서 어머니가 저세상으로 떠났을 때 먹먹했던 심정, 부부싸움 후 울었던 기억,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하기까지의 과정 등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가장 중요한 것이 가족인데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고 상대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예비지식이 없지 않나요?"라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제 나이 마흔에 가까웠을 때에야 어머니가 새벽녘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보던 그때가 어머니의 마흔 시절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여자였던 것입니다. 남편이 그립고 남자가 그립고 혼자인 것이 뼈아프게 외로웠던 여자였다는 것을 늦게야 깨달았습니다.' (44페이지)

신간은 저자의 강연회 내용과 에세이를 엮은 것. 때문에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듯, 자신의 경험을 밑천삼아 삶의 지혜를 건네준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너무 풍경같아서 자신 또한 잘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막 숨을 거두셨다고 누군가 외쳤을 때, 이제 '나를 위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이 세상에 어머니처럼 해 줄 사람은 없으니까요.' (47페이지)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