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갯메꽃

이른 바다는 쓸쓸하다. 한여름 이글거리는 태양과 인파에 달구어진 바다와는 느낌부터가 사뭇 다르다. 게다가 서해에서 일어난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마음이 무겁고 그 사고의 파장이 더욱 심정을 복잡하게 만들곤 한다.

이즈음 바다에 가면 갯메꽃이 피기 시작한다. 연분홍색 꽃이 피는 나팔꽃이라고 착각할 만큼 닮은 메꽃의 집안에는 메꽃, 큰메꽃, 애기메꽃 그리고 귀화하여 들어온 흰 꽃의 서양메꽃이 있다.

흔히들 메꽃보다는 나팔꽃을 더 잘 알지만 사실 나팔꽃의 본래 고향은 한국이 아니다. 오히려 메꽃이 더 오래 전부터 이 땅에 살던 풀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바닷가에 사는 종류는 앞에 '갯'자를 붙인다. 다른 메꽃들과 갯메꽃은 꽃은 똑같아 보이지만 아주 쉽게 구별할 수 있는데 바로 잎의 모양이 심장을 닮았다.

바닷가 모래땅에 뿌리를 내리고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를 바라보고 사는 갯메꽃에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까. 그리 하염없이 깊이와 끝을 알 수 없는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그리 될 것도 같다.

메꽃은 메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바닷가에 자라니 해안메꽃이라고도 하고, 메꽃을 닮았으나 조금 다르니 개메꽃이라고도 한다. 영어 이름은 씨바인드위드(Sea Bindweed)인데 바다에 자라는 덩굴지는 잡초라는 뜻으로 바닷가는 이 꽃이 피면 꽃밭이 된다.

뿌리줄기에서 줄기는 갈라져 모래땅 위로 뻗어 나간다. 돌이나 다른 풀 그 무엇이라도 있으면 그 물체에 기어 올라간다. 그렇게 옆으로 혹은 위로 펼쳐져 나간다. 절벽에 붙어 혹은 모래사장에 무리지어 자라나는 모습, 때가 되면 일제히 바다를 향해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화살촉 같은 뾰족한 꽃봉오리가 빗살무늬를 만들며 주름지어 있다가 햇살을 받으면 펼쳐진다. 다 펴진 꽃의 지름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연한 분홍색 꽃잎은 깔때기 모양의 통꽃이지만 상아빛의 선을 경계로 아주 약한 5개의 각이 진다. 그 아래에는 2개의 잎새 모양의 포가 마주 달려 있는 것이 이 집안 식물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익으면 벌어지는 둥근 열매 속에는 까맣고 단단한 씨앗이 들어 있다.

그냥 메꽃은 땅속에서 영양분을 비축하느라 굵고 비대해진 흰 땅속줄기를 먹는다. 배고플 땐 구황식물이지만 배부를 때는 건강식물이 된다. 갯메꽃은 메꽃처럼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바닷가에 있어 흔히 먹던 식물은 아니지만 동일한 용도로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 어린 싹을 먹기도 하고 땅속줄기는 약으로도 쓴다.

요즈음은 바다나 강이나 물이 복잡하다. 사람이 얽혀 더욱 복잡해진 일련의 일들에 마음이 아프다. 자연을 연구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정확하게 말해야 하는 과학적 사실의 한계와 자신의 생각을 구분하는 일에 어디까지 신중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하는지, 바다를 바라보는 갯메꽃의 마음처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