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내] 현대 건축 바라보는 대가들의 다양한 시각과 기준 보여줘

● 나는 건축가다
한노 라우테르베르크 지음/ 김현우 옮김/ 현암사 펴냄/ 1만 2500원

세계적인 건축가의 인기는 마돈나나 브래드 피트보다 훨씬 못하다. 이 말은 이 책의 저자 한노라우테르베르크의 말이다. 당연하다. 그들은 영화나 드라마나 광고처럼, 상점이나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스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들의 희소성이 더 빛을 발한다. 이들 작품은 대량으로 복제될 수 없다는 점에서 화가보다 더 특별하다. 이들의 작품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자본도 필요하다.

책 <나는 건축가다>는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의 기자 한노 라우테르베르크의 인터뷰집이다. 건축 이론과 도시계획, 현대미술에 관한 기사와 비평을 써온 그는 10여 년에 걸쳐 세계적인 건축 대가들을 인터뷰했고, 이 책을 썼다.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프랭크 게리부터 귄터 베니쉬와 세실 발몬드의 인터뷰는 현대 건축을 바라보는 대가의 다양한 시각과 기준을 알려준다.

"평론가들은 개성없는 건축을 책망하진 않고 내 건물의 독특함을 비판해요. 분명히 그 사람들은 대규모의 평범함을 좋아해요. 그런 태도는 비민주적이에요."(98페이지, 프랭크 게리 인터뷰 중에서)

"건축은 우리가 자기 자신과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줘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건축이 거꾸로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하죠. 인식은 바뀌어요. 진실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바뀌고요."(52페이지, 귄터 베니쉬 인터뷰 중에서)

건축물보다 건축 비평으로 더 유명한 피터 아이젠만과 역시 건축물보다 책으로 유명한 렘 콜하스의 입담도 이 책의 재미다.

"우리 모두가 항상 콜라만 마신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러면 어떤 와인이 좋은지 알 수 없을 거예요.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와인을 음미하고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겁니다. 건축도 마찬가지예요. 건축물을 감상하는 것도 차이를 느낄 수 있는가에 달려있죠."(67페이지, 피터 아이젠만 인터뷰 중에서)

'건축이 어떻게 사람의 삶을 더 낫게 할 수 있는가?', '건축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건축가들의 치열한 문답과 이들의 이력, 함께 실린 50여 컷의 건축물 사진은 현대건축의 흐름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인터뷰 곳곳에 드러나는 예술가로서의 자질과 인간적인 매력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다.

● 이웃
케네스 레이너드, 에릭 L. 샌트너, 슬라보예 지젝 지음/ 정혁현 옮김/ 도서출판b펴냄/ 1만 8000원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칼 슈미트의 정치철학을 재조명한 책. 세계 지성계를 이끄는 3명의 지식인은 몇 년에 걸친 강도 높은 대화를 통해 이 책을 집필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유대-기독교적 타자의 윤리를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통해 새롭게 사유한다.

●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서효인 지음/ 민음사 펴냄/ 8000원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한 서효인의 첫 시집. 사회와 타자를 순수한 시선으로 응시해 온 시인은 소년으로, 파르티잔으로 비정한 거리에서 살아남는 법을 노래한다. '타인이 고통에 공감하는 힘과 똑같은 종류의 힘이 청년의 분노를 붓끝으로 밀어올렸다'는 조강석 평론가의 해설처럼, 좌절과 분노를 웃어넘기는 이삼류 인생들의 의연한 코미디가 총 4부로 나누어 펼쳐진다.

● 처녀귀신
최기숙 지음/ 문학동네 펴냄/ 9000원

한번 소비하고 마는 처녀귀신의 공포를 젠더와 마이너리티 문제로 아우른 인문학서. 저자는 30여 편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속에 담긴 불편한 진실을 읽어낸다. 남자 귀신은 죽어서도 존경 받는 저승의 관리가 되는데 비해 여자 귀신은 구천을 떠도는 원귀가 됐다는 분석이 새롭다. 고소설에 나타난 남녀의 자살률 분석, 남자에게 고백했다 거절당한 여인들이 목슴을 끊어 귀신된 이야기 등 흥미진진한 사실이 눈길을 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